어느 날 문득,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대체 이 책을 왜 읽고 있지? 아마 제목에 끌렸던 것 같은데... 아 아니다. 베스트셀러라서 골랐던가...?"
돌이켜보니 최근에 읽은 책들 대부분이 이처럼 딱히 큰 목적성 없이 끌리는 대로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읽고 나서 남은 게 없었습니다. 굳이 찾자면 "나도 그 책 읽어봤어!"라고 어디 가서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정도일까요. 생각이 이쯤 닿으니 저 스스로가 독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에 빠져있습니다. 자기계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최고는 단연 독서입니다. 1년에 100권 읽기, 하루에 50페이지 읽기 등 독서로 성장을 꾀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정량적 목표를 설정하고 매일 도장 깨듯 독서를 합니다.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격언을 맹신하면서 뭐든 닥치는 대로 읽으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대체 이 책을 왜 읽고 있지?"라는 물음 앞에서 그 맹신은 마치 종이컵 탑처럼 저항 없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슬기로운 독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독서의 쓸모를 빠른 시일 내에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한 책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사다 스구루는 자신의 저서 <한 줄 정리의 힘>에서 책을 도장 깨기 하듯 읽기만 하는 행태를 '소비형 학습'이라고 지칭합니다. 소비형 학습이란 말 그대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책을 소비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비의 목적은 무언가를 얻고 사용하는 것에 있습니다. 소비형 학습의 문제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애초에 목적이 소비에 있기 때문에 책을 구매해서 소유하고 완독만 해도 뇌가 욕구를 충족했다고 판단하고 자연스레 읽은 내용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즉, 금세 책을 읽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히 책을 읽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적 희열에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기계발, 동기부여, 성장이 목적이라면 이런 독서 방법은 빠른 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사다 스구루는 소비형 학습의 반대 개념으로 '투자형 학습'을 제안합니다. 투자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투자라는 것은 결국 '이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즉, 독서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대비 어떤 명확한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자형 학습의 개념에 따르면 "나는 대체 왜 이 책을 읽고 있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됩니다. 생각해 보면 독서는 꽤나 시간이 많이 투여되는 활동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데 평균적으로 6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면 최저시급으로만 계산해도 대략 60,000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책값까지 포함하면 7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책 한 권을 읽고 7만 원 이상의 이익을 얻지 못했다면 투자형 학습의 관점에서 봤을 땐 손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제가 생각한 독서를 통한 이익이란 '변화'입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변화가 얼마나 많이 일어났느냐가 독서로 얻는 이익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컨대, 카페 창업을 위해서 카페 창업 관련 책을 읽었다면 독서 후에 관련 지식에 변화가 있어야 이득을 본 것이 됩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알맹이가 없고 별로였다면 관련 지식에 큰 변화가 없을 테고 그럼 투자의 관점에서 손해를 본 것이 되는 것이죠.
독서로 삶에 변화를 만드는 <투자형 독서노트>
아사다 스구루는 투자형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 당신은 그 일을 왜 했는가? (Why)
2. 당신은 그 일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What)
3. 당신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이것을 독서에 적용해 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당신은 왜 그 책을 읽었는가? (Why)
2. 당신은 그 책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What)
3. 당신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저는 이렇게 3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양식을 '투자형 독서노트'라고 명명하고 직접 독서노트로 활용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전에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밑줄 그은 구절을 갈무리하던 독서노트에 비해 얻는 것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이 독서노트가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는 독서의 목적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일의 목적을 모르면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제가 "이 책을 왜 읽고 있지?"라는 물음에 빠졌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Why는 모든 일의 시작이자 핵심입니다. 투자형 독서노트의 1번 질문은 이런 핵심을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이처럼 Why를 인지한 상태에서 책을 읽기 때문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What)도 명확해져서 책을 읽으면서 관련 정보들을 더 집중적으로 찾고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투자형 독서노트를 완결 짓기 위해서는 배운 내용들을 어떻게 활용할지(How)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하기 때문에 앞서 얘기했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삶에 활용하여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익이 아닐까요?
한때 국내에 인문학 열풍을 만들어냈던 광고인 박웅현은 자신의 저서 <책은 도끼다>에서 카프카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책이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처럼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것이 도끼로 찍어내리는 정도의 충격이 아닐지라도, 얼마가 되었든 독서 이후의 삶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기만 한다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소화하고 조금이라도 변화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그것은 마음의 양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