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c'는 팬톤의 레드 컬러 코드입니다. 이 컬러 코드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베를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요르크 코흐(Joerg Koch)는 동명의 매거진을 창간했습니다.
패션&아트 매거진 032c는 2000/2001년 겨울호 창간을 시작으로 일 년에 단 두 번만 출판되었으나 타 매거진과는 다른 독특한 네이밍과 강렬한 레드 컬러로 장식된 표지 디자인 덕분에 꽤나 빠르게 많은 이의 이목을 끌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032c는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매거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은 물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됐습니다.
2016년 베를린에 문을 연 첫 오프라인 매장/공간은 단순한 리테일 숍이라기보다, 매거진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이곳에서 032c는 패션 어패럴 라인을 확장했습니다. 초기 상품은 티셔츠, 스웻셔츠, 소규모 의류/머천다이즈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패션 어패럴 라인의 핵심 인물은 Maria Koch로, 그녀는 요르크 코흐의 아내이자 032c 어패럴 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디자인을 이끌었습니다. Maria는 Jil Sander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032c 특유의 실험적이면서도 서사적 디자인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매거진 기사나 문화 이벤트와 연관된 아이템들을 선보이며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 갔습니다. 예컨대 <Gosha Rubchinskiy 사진전> 기념으로 제작된 티셔츠 같은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의 어패럴 제품이었는데 이런 제품들이 출시될 때마다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이후 2018년에 ‘What we believe’라는 타이틀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단순 머천다이징을 넘어 의류 브랜드로서 입지를 제대로 다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032c가 매거진으로 시작된 브랜드라는 사실을 모르고 어패럴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어패럴 브랜드로서 완전한 입지를 굳혔습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요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잡지는 의류에 덧붙이는 추신 같은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032c 매거진의 편집장 톰 베트리지(Thom Bettridge)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콘텐츠 시대에는 웹 기사와 잡지 기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옷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매거진 기사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032c가 여전히 매거진이라는 본질을 잘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패럴을 전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전파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 혹은 콘텐츠의 전달 방식으로 그것이 더 적합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거죠.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언젠가 어패럴보다 더 나은 사물 혹은 플랫폼이 있다면 032c는 언제든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032c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다면 그 전달 방식은 '수단'일뿐이라는 점입니다.
브랜드 미션을 달성하는데 현재 비즈니스가 전개되고 있는 메인 채널보다 더 나은 수단이 있다면 과감히 틀을 깨 보세요. "우리 브랜드는 의류 브랜드야", "우리 브랜드는 온라인에서만 전개해야 돼"와 같은 고정관념이 브랜드 메시지를 비효율적으로 전달하게 만드는 가장 큰 함정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