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4년 만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잠깐 외출이 아닌 진짜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내는 날이다. 2018년 9월 첫아이가 태어난 후 2021년 5월 둘째가 태어났다. 그날부터 나는 나로 살았다기보단 엄마로 다시 태어나 엄마로만 살았다.
그런 나에게, 나로 돌아가는 날을 선물 받았다.
두 달 전, 무척이나 육아로 지친 날이었다. 남편과 그날 있었던 일들(첫째가 징징거린 이야기, 둘째가 종일 안아달라고 해서 어깨랑 팔 빠지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에 대해 토로하다가, 나는 다짜고짜 남편에게 "오빠 나 둘째 돌 지나고 나면 자유부인 제대로 하게 해 줘. 그냥 광화문이랑 정동 가서 편하게 하루 보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래, 하루 편하게 쉬고 와. 호텔 예약해줄게"라고 했다.
그즈음 딸이 그려준 나의 얼굴. 웃음꽃이 활짝.피었다.
앗싸 가오리! 쌰오리따! 그날부터 나는 뭐랄까? 소풍을 기다리는 학생? 첫 소개팅에 나서는 여대생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설렘으로 보냈다.
첫째가 아무리 징징거려도 콧노래가 나오고 둘째가 안아달라, 업어달라, 놀아달라 수 없이 요구해도 힘들지가 않았다. 디데이 일주일 전부터는 웃음이 실금실금 나오기도 했다. 남편에게는 평소엔 잘하지 않던 "사랑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오빠 나 진짜 너무 기대돼 이렇게 좋을지 몰랐는데 진짜 혼자 하루 보낼 생각 하니 너무 좋아서 막 웃음이 나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본래 계획은 첫째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혼자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또 남편에게 광화문-정동은 큰 의미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TMI = 우리는 정동에서 만나서 연애 후 결혼했다. 데이트도 정동-광화문에서 자주 했다) 그리고 나는 광화문-정동에서 오랜 직장생활을 해온 터라 정말 나의 피땀눈물이 곳곳에 묻어있고 나의 젊음과 열정을 쏟은 곳이기에 아이들에게 그냥 보여주고 싶고 소개하고 싶었다.
아침부터 부지런 떨어 광화문에 도착해서 종종 가던 식당에서 온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또 광화문과 정동에 있는 전 직장을 찾아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만났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장소도 데리고 가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쌀 박물관에 가서 체험도 하고 갑자기 호수가 보고 싶다는 딸의 요청(?)에 청계천 구경도 하고 구석구석을 행복하게 다녔다.
우리 가족이 지나간 광화문과 정동, 시청 곳곳에는 행복의 꽃가루 혹은 기쁨의 반짝이 가루가 향기롭게 빛나며 흩날리고 있으리라.
그리고 4시 30분. 남편이 "우리 이제 집에 갈게. 더 지나면 차 막히고 너 자유시간도 짧아지잖아. 간다"라며 아이들을 카시트에 후다닥 태우더니 쓩하고 갔다.
드. 디. 어.
자유다.
기저귀도 없고 물티슈도 없고 떡뻥도 없고 물통도 없고 튤립사운드북도 없고 젤리도 없고!!!!
가방에 지갑과 쿠션 팩트, 립스틱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을 느꼈다.
혼자된 나는 그냥 걷고 싶었다. 광화문과 시청, 정동길을 걸었다. 날씨도 얼마나 좋은지, 바람에서 달큼한 향기가 났다. 정동길을 걸을 땐 피식 웃음이 나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라며 마스크를 쓴 채 중얼거렸다. 이화여고 아이들이 하교하는 걸 보며 흐뭇했고, 사원증을 매고 동료와 이야기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젊은 직장인 모습은 부러웠다.
한참을 걷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래! 저녁을 먹자! 혼밥이라니!!! 늘 외식을 하면 아이들 먹이느라 남편과 교대로 밥을 먹어야 했었다. 오늘은 오롯이 나 혼자 천천히 먹을 수 있는 날이다. 난 예쁜 밥을 먹고 싶었다. 정갈하게 예쁜 그릇에 반찬이 하나씩 담겨있는. 그런 식당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정갈하게 한상차림으로 나오는 돌솥비빔밥집을 찾아서 한 그릇 뚝딱 여유롭게 먹었다. 괜히 사진도 찍고, 핸드폰도 보고 입가에 묻지도 않은 음식물을 닦기도 했다.
괜시리 한번 찍어봤다.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뜨거운 음식 식히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가, 아이들 조용히 시키다가 또 흘린 밥풀, 반찬 줍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식사를 종료하기 일쑤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눈칫밥 먹는 기분이랄까.
암튼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좋아하는 빵을 사러 또 걸었다. 빵을 사들고 교보문고에 가서 에세이 코너, 소설 코너 돌다가 결국 아이 유아책 코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모자라 핫트랙스와 문구 판매에선 딸아이 선물을 한참 동안 골랐다.
그리고 나의 자유부인 일정의 하이라이트이자, 기대하고 고대하던 혼자만의 1박을 위해 신라스테이 서대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