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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Nov 11. 2019

살이 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맞아요. 야식은 죄가 없어요. 야식을 먹는 내가 잘못일 뿐.

 혼자 사는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배달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걸리는 딜레마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양. 배달 음식은 기본 2인분이니, 양 때문에 주문하기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사실 난 2인분도 혼자 먹을 수 있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


 어느 날 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부모님 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엄마, 아빠는 우리를 보자마자 경악하셨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우리 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렇다. 우리는 보기 좋게 살이 쪄서 고향에 내려간 것이었다. 엄마는 이 사태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질문공세를 시작하셨다. 


- 기숙사에서 주는 밥 대신 다른 걸 먹니? - 아니요.

- 저녁에 야식 먹니? - 아니요.

- 과자 쟁여두고 먹니? - 아니요.


 당연히 '아니요'라는 우리 대답이 다 거짓말이다. 기숙사에서 주는 밥 대신 다른 걸 먹을 때도 있었고, 야식은 배고픈 대학생들의 기본 패치일 뿐이고, 공부하느라 아픈 머리를 달래기 위해선 당 충전이 필수인걸요.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자매 둘이서 사니 매일 밤마다 야식 파티가 벌어진다.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오늘 내가 치킨삘이 아니더라도 언니가 치킨삘이면 같이 치킨을 먹어야 하고, 오늘 언니가 피자삘이 아니어도 내가 피자삘이면 언니는 꼭 함께 피자를 먹어야 했다. 원래 음식은 혼자 먹으면 맛없다는 핑계와 함께. 매일마다 서로의 삘이 어긋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일마다 야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분명 안 먹고 싶었는데 언니가 먹고 있으면 먹고 싶어 진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한입만'의 현장.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엄마는 지금도 낚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어제는 뭐 시켜 먹었는데?" 이런 질문의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다. "밥 해가지구 김하고 김치하고 계란후라이 해서 먹었지요" 오늘도 엄마는 심증만 가진 채 우리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같이 붙어살다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오늘은 족발삘'이라던가, '오늘은 뭔가 느끼한 게 먹고 싶은데 그게 뭘까?' '그건 바로 짜장면삘'이라던가. 먹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이렇게 잘 맞는 쿵짝도 없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매일 밤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야 우리 살 너무 많이 찐 거 같아. 이제 진짜 다이어트 좀 하자.' '그래 다이어트 하자. 일단 오늘 치킨 먹고 내일부터 콜?' 매일 밤 그렇게 하다 보니 둘이 비슷해진 몸뚱아리를 가진 채 몇 년이 흘러버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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