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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Nov 11. 2019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힌트 : 맛있는 거)

원래 밖에 나갔다 집에 올 때는 양 손 무겁게 오는 거야

 어릴 때는 아빠의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아빠가 퇴근하시고 가져오시는 과자가 내 기쁨이었다. 혹은 엄마가 외출하는 날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뭐 맛있는 걸 가져오시려나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자매메이트가 집에 오기를 기다린다. 


 집에 있으면 코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는 것조차도 세상 귀찮은 일이 된다. 배달음식 시켜먹기엔 부담스럽고, 딱 과자 정도 먹고 싶은데 마침 그날 자매메이트가 외출을 한 날이라면? 당연히 집에 오기 전 편의점에 들려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 번은 외출을 했다가 편의점에 들리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간 날이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니 언니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 왔느냐는 말에 한껏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때 난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았다. 내 가방 속에는 과자가 없었다. 과자가 없다는 말에 언니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 가방을 뒤졌다. 진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언니는 바람 빠진 풍선의 모양새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외출했다 집 근처에 오면 칼같이 전화를 한다. 나 지금 집 다 와가는데 뭐 사가? 필요 없다고? 진짜 필요 없다고? 진짜 필요 없는데 과자 하나 사 오면 좋겠다고? 


 이날부터 우리는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 전 꼭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전화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오늘 집 지킴이가 먹고 싶은 food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 문을 열고 싶다면 과자를 바쳐라

 자매메이트가 집을 장기간 비우는 날이 있다. 짧으면 하루부터 길면 1-2달 정도까지. 이때 제일 많이 변하는 생활패턴이 바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것도 옆에서 같이 먹어주면 먹고 싶은 음식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언니가 집에 없는 날이면 나는 먹는 게 급속도로 줄어든다. 외출했다가 과자를 사 올 사람도, 배달음식을 시켜서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으니 입맛도 떨어지는 것이다. 가끔 자매메이트에게 툴툴거릴 때가 있다. 뭐든 2인분씩 사야 하나 경비도 2배가 된다고. 그런데 같이 먹으면 경비가 2배인 만큼 먹는 재미도 2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좀 떨어져 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떨어져 살면서 살 빼고 다시 합칠까? 진짜 이렇게 같이 살다가 둘 다 눈사람 돼서 굴러다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퇴근할 때 과자 사 오는 거 잊지 말기. 이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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