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부모님 급습 1시간 전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자녀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항상 청결하고 정갈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자녀들도 부모님처럼 깔끔하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정답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제 자유를 찾았는걸요.
언니와 내가 사는 방의 평소 모습은 도둑이 들어 방을 한바탕 뒤집은 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빨래건조대의 빨래를 다 빼서 입을 때쯤 다시 빨래를 하니 건조대는 접힐 새가 없고, 외출했다 입은 옷들은 의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분리수거는 하지만 제때 버리지 않아 매일 벽 한쪽에는 쓰레기가 쌓여있고 설거지는 뭐. 하긴 하죠. 매일 하지 않을 뿐.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사는 게 바빠서.
그렇게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딸~ 엄마 지금 반찬 싸서 딸내미들방 가고 있어~". "하하호호. 엄마 조심해서 오세요. 엄마 힘들게 반찬은 또 왜 만들어서 오신대, 우리가 내려가서 가져가면 되는데. 아휴 언니랑 저랑 다 집에 있죠. 그럼요. 조심해서 오세요. 아? 이미 출발해서 1시간 안 걸리실 것 같다구요? 네네. 괜찮아요. 얼른 오세요~".
전화를 끊는다. 침대랑 한 몸인 줄 알았던 언니와 나는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일으킨다. 비상이다. 나는 재활용 버리고 올 테니까 너는 빨리 설거지해라. 냉장고 안에 반찬은 어떡해? 우리 다 먹었잖아? 그거 2통이었잖아! 1통만 다 먹었어! 하. 일단 좀 안 보이게 숨겨봐.
사람은 위급상황이 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띵동. 부모님이 도착하셨다. 우리 집은 깔끔해진 후이다. 물론 엄마 눈에는 완벽하지 않은 깔끔이지만 말이다.
언니와 나의 쿵짝이 잘 맞는 몇 안 되는 날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님이 우리 집을 급습하시는 날이다. 엄마는 항상 말씀하신다. 엄마가 남도 아니고, 딸들 불편할까 봐 몰래 가서 냉장고나 채워주고 집 더러우면 치워주고 오려하는데 뭐가 그렇게 불편하냐고.
당연히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쓸고 닦아놓아도 집에 오면 다시 쓸고 닦는 엄마의 모습. 우리가 하면 되는데 굳이 엄마 손으로 또 주방을 치우고 방바닥을 쓰는 모습을 볼 때면 당연히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가 애써 해준 반찬들을 다 먹지 못했는데 그걸 보며 실망하실 모습을 떠올리면 당연히 마음이 불편하다.
한 날은 언니와 내가 모두 집에 없는데 부모님이 우리 방에 올라오셨다. 방을 치울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집은 초토화 상태였다. 밖에서 볼일을 보고 귀가하니 집이 멀끔히 치워져 있다. 그대로 두면 갔다 와서 치우겠다는 메모까지 남기고 갔는데 결국 집을 치우신 거다.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말씀하신다. 초토화된 집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고. 뭐 그리 사는 게 바빠서 집도 못 치우나 싶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부모님 급습 소식이 들리면 집을 안 치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부모님 급습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비상체제를 가동한다. 삑삑! 부모님 급습 1시간 전. 집안 대청소 풀가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