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메 Nov 11. 2019

님아 제발 그 불을 꺼 주오

제발 남한테 하는 만큼의 배려 부탁드립니다만

 대학교 기숙사에서 언니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야 했던 기간이 있다. 언니가 교생실습을 가느라 기숙사 대신 부모님 집에서 통학을 했던 기간, 그리고 언니가 졸업을 하고 난 후 나 혼자 학교를 다녀야 했던 기간. 혈육이 아닌 타인과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고,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남'과 산다는 건 여러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청소하고 싶지 않아도 청소를 해야만 하는 날이 있고, 내가 자고 싶지 않아도 자야만 되는 시간이 있었달까. 그중 제일 조심스러웠던 건 아무래도 잠자는 시간을 맞춰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올빼미형 인간이더라도 자는 시간 기준은 꼭 아침형 인간에게 맞출 것. 그러니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해야 할 일이 남았으면 조용히 노트북 들고 지하 독서실로 내려갈 것. 그냥 조용히 공부하는 것이라면 소등하고 스탠드 불을 켤 것.


 그렇게 남과 함께하는 기숙사 생활은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지만 편하고 즐겁기도 했다. 일찍 나가야 하는 아침에 룸메가 깨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건 불편했지만, 시험기간만큼은 예외로 방에 불을 켜 둔 채 새벽 3시까지 서로를 깨우며 공부하는 시간은 분명 즐거웠달까.


 그런데 혈육은 달라요. 암묵적인 무시와 '나를 배려해라'가 판치는 재매메이트 생활.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기로 해요. 늦은 시간에는 잠자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그날은 언니가 회사일을 가득 들고 집에 귀가한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말에 나는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도 견디고, 밝은 불빛도 견디는 중이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끝나겠지, 이제 곧 자겠지 하던 내 인내심은 새벽 4시 넘어서까지 멈추지 않는 키보드 소리와 함께 다 닳아버렸다. "아! 진짜 너무하네!" 그러자 언니가 적반하장 소리친다. "아! 그럼 어떡해? 내가 일부러 그래? 이게 오늘 까진 걸 어떡해!" 그렇게 언니도, 나도 그날 밤을 꼴딱 새웠다.


 며칠 뒤, 언니는 또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퇴근을 했다. 내일 할로윈 파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거 조금만 하고 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눈으로 욕하는 나에게 언니는 과자를 내밀었다. 내가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라 열심히 했는데 도통 끝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넓은 아량으로 새벽 1시까지만 봐주겠다고 했다.


 그날 나는 언니와 함께 새벽 6시까지 할로윈파티를 위한 재료를 준비했다.


 자매메이트란 그렇다. 내가 힘들어하면 결국 상대가 져줄 것을 안다. 그걸 알아서 배짱 장사를 하는 자매메이트.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모습이 너무 미운데, 그게 안쓰러워서 서로를 봐준다. 하지만 남보다도 못한 사이 되기 전에 가끔은 남처럼 나를 대해주길 바래. 알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