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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Nov 11. 2019

옷장을 열었는데 그 옷이 없는 거야

이럴 때만 통하는 텔레파시

 매일 밤 다음날 입을 옷을 코디해놓는 부지런쟁이는 아니지만, 중요한 약속이 있을 경우 전날 머릿속에 다음날 입을 옷을 시뮬레이션해보고는 한다. 이 바지에, 저 셔츠 입고 가방은 이거 들면 되겠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언니도 약속이 있어 이미 집을 나간 후이다. 언니도 없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씻고 나와 옷장을 연다. 싸한 느낌. 어제 시뮬레이션 돌렸던 옷이 없다. 설마 빨래통에 넣어두었나 싶어 빨래통을 뒤진다. 역시 없다. 이때쯤이면 속에서 화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설마 언니 너란 사람이 입고 간 건 아니겠지? 부리나케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언니 지금 스트라이프 통 큰 셔츠 입고 갔나." 전화 너머로 깨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동생아~~ 나 그거 입고 나왔는데 왜~~~?"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목소리라 더 화가 난다. "그거 내가 오늘 입으려고 했던 거라고." 그러자 돌아오는 말. "어? 네가 나한테 이거 입는다고 말 안 했잖아?". 그래. 말을 안 한 내 잘못이야. 남에겐 죄가 없다. 모든 건 내 탓일 뿐.


 밖에 있는 언니에게 찾아가 옷을 벗길 수도 없으니 대체안을 찾는다. 사실 꼭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꼭 그 옷이 입고 싶어 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뿐이다.


 이 이야기는 매달 1번 서로가 서로에게 극악으로 화를 내는 사건 중 하나이다. 기분 좋게 놀고 있다가 욕을 먹은 사람은 "그렇게 입고 싶었으면 미리 입고 가지 말라고 말을 해 두던지!"라고 말하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없어 화가 난 당사자는 홀로 불같은 화를 내다가 옷을 미리 빼두거나 동생(언니)에게 내일 입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정말인지 옷이 뭐라고.

이런 걸 자매 텔레파시라고 하나 봐. 네가 입고 싶은 건 나도 입고 싶은 거.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한 번 씩 꼭 입고 싶은 게 겹친다. 자매끼리 덩치가 비슷해 한 옷장에 옷을 넣어놓고 공유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상사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한바탕 벌어지고 나면 저녁에 난리가 난다. 이제부터 네 옷은 네 옷장에, 내 옷은 내 옷장에 나눠놓자느니 (그러면 지금 있는 옷장은 내가 쓸테니 네가 네 돈으로 행거를 사라느니), 그 바지는 내가 산 거니 앞으로 절대 입지 말라느니 유치한 설전이 벌어진다. 티셔츠는 주로 언니가 사고, 바지는 주로 내가 사니 서로 아래위로 발가벗고 다니면 되겠다며 소리 지른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옷을 공유하고 입는다. 옷을 나누기엔 가짓수가 너무 작은걸 우리가 아는 거지. 그래서 지금도 옷장 공유는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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