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한 사람만 있고 청소한 흔적은 없는 미스테리
집안일. 이놈의 집안일은 해도해도 매일 리셋이다. 집안일만큼 다양한 종류를 가진 일도 없을 것이다. 화장실 청소, 설거지, 빨래 돌리기, 빨래 널기, 빨래 개기, 방바닥 쓸기, 소지품 정리, 이부자리 정리 등등. 방은 한 칸인데 청소할 것들은 왜 이리도 다양한 건지.
어떤 잡지에서 조별과제 무임승차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무임승차자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은 많은데, 무임승차를 했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는 미스테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게 딱 우리 방에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원룸방 안에는 집안일하는 사람만 있고 안 하는 사람은 없는 거야. 그런데 신기하지. 둘 다 청소를 하는데 왜 집이 더러운 걸까. 나도 저번에 화장실청소 했고, 너도 저번에 화장실청소를 했는데 왜 화장실이 더러운 건데. 근데 나는 진짜로 저번에 화장실 청소했어.
매번 청소문제로 싸우다 보면 그냥 처음부터 집안일을 칼 같이 나눠서 하면 좋겠지만, 자매 사이에는 또 그렇지가 않다. 남보다는 편한 관계이다 보니 '그냥 서로 알아서 눈치껏 하자'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이랑 살면 규칙, 규율 빡세게 세워서 지키면 되지만 자매 사이는 또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제일 가까운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니까.
사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와 달리 부모님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로는 그렇게 청소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 살 정도만 되면 되지 않겠느냐는 여유가 생긴달까. 둘 다 게으름뱅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이 청소문제가 유달리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내 마음에 손톱만큼의 여유조차 없어진 날이 찾아올 때이다.
사람이 되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싶은 말을 듣고, 화가 나는 일들을 한가득 겪은 날이면 마음의 여유는 고사하고 온몸에 가시를 돋운 채 집에 귀가하게 된다. 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데 어지러운 집안을 쳐다보고 있으면 뼈가 저릿한 화가 치민다. 내가 어지른 게 절반이지만 잘됐다 싶어 바깥에서 끌어온 분노까지 합쳐 자매메이트에게 던진다. "집 꼬라지게 이게 뭔데. 맨날 나만 치우나!". 그렇게 한바탕 화를 내고 나는 가방도 바닥에 던져놓은 채 침대에 눕는다. 짜증 나니까 건들지 말라는 말과 함께.
다음날 출근시간에 쫓겨 전날 일은 사과할 새도 없이 집 밖을 나선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온다. 집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말끔히 치워진 집안에 웅크리고 앉아 자매메이트에게 카톡을 한다. '어제 화내서 미안해.' 메이트에게서 답장이 온다. '이제 화는 좀 풀렸나? 집 깨끗하지?'
깨끗하게 치워진 집 안에 앉아 생각한다. 화는 화를 나게 만든 사람에게만 그대로 돌려줄 것.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소중하게 대할 것.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을 가방걸이에 걸어두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