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0
쓰레기줍기는 좀 신기한 봉사활동이다. 뭐, 나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처음에 멀리서 쓰레기를 발견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잡풀 사이에 플라스틱 커피병이 고개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쯤 남은 커피에 담배꽁초는 덤.
도대체 누가 저런데 버리는 거야? 그렇게 살고 싶나? 세상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그러나 일단 걸으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면 희한하게도 감정이 가라앉는다. 봉투에 쓰레기가 쏙 들어가면 기분이 나아진다. 이번에는 담배갑을 주워다가 넣어볼까. 그러다보면 슬슬 봉투가 찬다. 게임 점수가 올라가는 것처럼 약간의 재미 같은 것도 생긴다.
기분이 좋아지면 그제야 주변 풍광이 들어온다. 양양 하조대 해변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이었다. 횡단보도를 천천히 지나가도 도로 양쪽 끝까지 차가 없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구나, 한적하다는 말은 이런 날을 두고 쓰는 구나. 살짝 까칠한 상태로 출발한 봉사활동은 어느새 여유로운 산책을 겸하는 활동이 되어 있었다.
하조대 정자까지 올라가는 길에 쓰레기를 줍고, 등대에 들렀다가, 같은 길을 따라 내려왔다. 갈 때 쓰레기가 있던 길이 깨끗해져 있었다. 망가진 풍경이 회복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꽤 뿌듯했다. 살면서 내가 한 행동이 눈앞에서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데 쓰레기 줍기는 전과 후가 분명이 다르다. 적어도 내가 걷는 길에 한해서는 확실히 괜찮아진다. 아마도 이런 쓰레기줍기의 '즉각성'이 은근한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았다.
줍자, 줍자, 쓰레기를 줍자. 몸을 낮추고, 한개씩 줍자. 단순한 동작이 참 좋다. 잡생각이 잦아드는 행위는 언제나 환영이다. 쓰레기도 줍고, 내 마음도 다독이고, 머리도 식히고. 딱 재미있을 만큼만 하고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