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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27. 2023

시골집에는 귀신이 산다.

주말집에 오니 주방 후드가 돌고 있다. 꺼놓고 갔는데..

주말의 시골집에서 돌아올 때 화장실이나 창고 불을 켜놓고 올 때가 있다. 아직 해가 을 때 돌아오면 남편이 가끔 그런 실수를 하는데 다음 주말까지 밤낮없이 켜져 있기 때문에 철수하기 전에 한번 더 확인을 한다.   


노란 은행잎이 하루가 다르게 선명해지는 때라서 시골을 향한 마음이 바쁘다. 아직 주말이 되려면 멀었지만 어제 벌써 시골에 도착했다. 주방 문이 고장 나서 안 잠기기에 열쇠도 없이 집 뒤쪽으로 돌아가니 후드에서 연결된 구멍으로 바람소리가 쌩쌩 들린다. 빈 집에서 뭔가 작동되는 소리는 수상쩍기에 얼른 주방 문을 열어보니 전기레인지 위의 후드가 3단계로 세게 돌아가는 중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에 얼른 후드를 끄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지난 주말에 해놓고 간 그대로인데 후드만 혼자 저절로 작동되고 있었다. 주말집을 지은 이후 7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서 전기 오작동인가 싶기도 하고 설마 누가 다녀간 건가 싶기도 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단풍은 일주일 만에 산 중턱까지 내려와서 시골 마을이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궁금증이 풀리기 전에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처럼 해결되지 않는 시골집의 문제에 부딪힐 땐  척척 답을 내놓는 귀촌카페를 활용하면 된다. 질문을 올리니까 감시 카메라를 돌려 확인해 보라는 댓글이 가장 먼저 알려와서 뒤뜰의 화면을 빨리 감기로 보고 있으니 두 번째 댓글이 올라온다.


먼지나 가스가 감지돼서 자동으로 돌아간다는 설명에 그제야 납득이 되었다. 전기쿡탑이라 가스는 아니겠고 아마도 청소를 게을리해서 먼지가 많고 부엌문이 꼭 잠기지 않으니까 틈새로 먼지바람이 불었나 보다. 먼지가 얼마나 많았으면 가장 센 단계가 돌고 있었는지?


이처럼 시골에서는 수상한 소리가 집안팎으로 가끔 나서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가 있다. 지붕의 목재가 수축하여 뚜뚝하는 소리도 자주 난다. 일교차가 심한 계절에 특히 심한데 밤중에 그런 소리가 들리면 나처럼 간이 큰 사람도 화들짝 놀란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어젯밤처럼 천둥 번개가 치는 날씨에는 나뭇잎끼리 스치는 소리가 나서 더 무섭기도 하다.    


부엌문이 안 잠겨도 남편 없이 혼자 와서 며칠씩이나 자는 나를 두고 겁이 많은 시누이는 무척 부러워한다. 자신은 시골에 살고 싶어도 아파트에서조차 혼자 못 자는 사람이라 마음뿐이라고 아쉬워하니 시골에 살려면 나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가능하다.


어제는 암카페의 회원 한 명이 놀러 왔기에 천둥 치는 비 오는 밤이 덜 무섭긴 했다. 방이 하나뿐인 시골집은 안방의 침대가 손님용이고 나는 황토방에서 따로 다. 아늑한 황토방에서 자면 시골 맛이 훨씬 더 나서 남편과 함께 와도 각자 떨어져 편하게 잔다.


시골집의 황토방에서 동네 이웃 언니들이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고 하룻밤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자고 가곤 했는데 다음 달부터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다. 우리 동네에 있는 조그만 교회의 목회자가 이웃을 통해 엄마가 오시면 잘 곳이 없다고 황토방을 빌려달라고 했다. 주말집인 데다 별채로 되어 있어 누가 써도 상관없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가스로 난방을 하니까 연료비 정도만 받기로 했다. 여름이면 얼마든지 무료로 드릴 텐데 동절기엔 약간의 비용을 받는 쪽이 서로 편할 것 같았다.


황토방에는 화장실과 주방이 없어서 따로 세를 주진 못 한다. 세 평짜리 방이 전부라 밤중의 화장실 사용은 부엌문이 고장 났으니 본채를 이용하라고 말해두었다. 이젠 새 집도 아니고 헌 집이 되었기에 우리 집에 온 손님에게 누구라도 시골에 쉬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다녀가라고 말해둔다.


서울에서 힘든 회사 생활에 지친 남동생은 8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와서 황토방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출근하기도 한다. 몸을 시달리게 해야 정신이 덜 피곤하다는 이유로 네 시간씩 달려서 땀투성이가 되어 오는 걸 보면 좀 멋있어 보인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월동시금치 씨앗을 텃밭에 골고루 뿌렸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푸성귀를 제공해 주는 소중한 시금치이다. 고구마는 땅콩에 이어 실패를 한 것 같다. 하지만 고구마순을 여러 번 따서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저녁을 먹자마자 해가 지고 캄캄해진 바람에 서둘러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시골에 살면 비록 귀신은 없지만 밤보다 아침이 훨씬 더 반갑고 기쁘다는 걸 알게 된다. 어제와 오늘 두 번이나 다녀온 동네 카페를 또 갈 수도 없고 내일은 무엇을 하며 보낼지,


지난 주말에 이어 무청을 또 솎아서 무청 지옥에나 빠지는 수밖에 없다. 무청 겉절이, 무청 나물, 무청 된장국을 연달아 먹고 나니 내일은 여린 무청으로 소금에 절이지 말고 김치를 담아야겠다.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이장님 댁의 구절초


진입로에 떨어진 벚꽃 이파리



시골집 황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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