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몇 년 안 되었을 때 나보다 더 오래된 시골 분이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살아보면 초록이 무서워질 거라고. 그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 되었다.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장마철이 되면 시골의 풀들은 왕성하게 자란다. 봄에는 그럭저럭 마당과 꽃밭을 관리했는데 여름엔 그저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덥기도 하지만 문 밖만 나서면 산모기가 덤벼서 긴 옷을 입어야 하니 땀으로 목욕하는 건 일도 아니다.
텃밭과 마당의 잡초를 한바탕 뽑고 나서 샤워를 하고 모기약을 발라도 벌게진 얼굴은 금방 식지 않는다. 옷은 땀과 함께 몸에 달라붙어 떼어내면서 벗어야 한다. 이러니 여름의 풀은 그저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야지 싸우려고 덤비면 내가 먼저 쓰러지게 생겼다.
옆밭에 심어놓은 호박과 수세미는 왕성하게 이파리를 늘이지만 잡초도 그에 못지않은 기세로 키를 높이니 풀을 없애지 않고는 호박을 찾을 수 없어서 애호박이 자라서 어른호박이 되었다. 그래도 맛은 달큼해서 나물로 해서 먹고 카레나 깡통 꽁치 조림에 넣어도 맛나긴 했다.
시골살이가 세월 가는 줄 모르게 흘러서 이젠 그다지 집 안팎을 꾸미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풀이 좀 난들 어떻고 어수선해 보이면 어떤기. 심어놓은 나무며 화초가 풀과 함께 집을 온통 둘러싸도 나가서 일할 엄두가 안 나니 쳐다만 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새벽에 일어나 풀을 뽑을 경우가 있지만 남편과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일어나면 해가 먼저 떠있어서 일은 또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아직 잔디를 한 번도 깎지 않아 풀과 함께 잔디가 한 뼘이나 자라 있는데 다음 주에는 꼭 깎아야 한다. 옆밭의 잡초도 다음 주에 예초기로 밀기로 했는데 여름의 마당일은 중노동에 해당한다.
칠팔 월은 시골 생활을 과연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한다. 잡초와 모기 그리고 지네와 뱀이 잘 버티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계절이 바로 이 여름이다. 예쁜 꽃도 풀을 뽑지 않으면 즐길 수 없고 텃밭도 잡초를 잡지 않으면 작물 구경이 힘들다.
풀 뽑다가 손가락 관절부터 아프고 보면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좋기는 한량없이 좋은데 그걸 누리려니 감당해야 하는 것 중 첫 번째가 풀이고 두 번째가 벌레와 뱀이다.
그렇지만 열대야 없는 시골의 선선한 밤공기와 한기까지 드는 새벽바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서 다음 달에는 시골에서 푹 지낼 계획으로 이 습한 더위를 견디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