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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29. 2024

독립과 동거 그 중간쯤에 살아요.

서른 넘은 딸이 독립했다가 자러 들어온 이야기

첫째 딸은 지난 4월 말에 집 근처의 오피스텔로 독립을 했다. 딸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주방을 마음대로 쓰며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날마다 노래를 부른 지 한 달쯤 지났다. 집 안에서 하루 만 보를 걸을 정도로 닦고 쓸고 정돈하며 처음으로 생긴 자기만의 집에 무척 만족하는가 했더니 딸은 자신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로움에 시들기 시작한 딸은 하루종일 적막한 공간 속에 일하고 먹고 자는 일상을 못 견뎌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난 후 딸은 "엄마! 나 집에서 자면 안 될까? 그리고 저녁 한 끼는 집밥이 먹고 싶어."라고 말했다. 딸이 독립한 후부터 하루 두 번 보던 시장을 안 보고 식사 준비를 대충 하던 나는 딸의 제안이 속으로 반가웠다. 냉장고가 텅 비어 먹을 게 없고 집안일이 대폭 줄어 너무 심심하던 터라 저녁 한 끼를 준비하고 잠만 잔다면 나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렇게 딸은 아침이면 자신의 오피스텔로 출근해서 점심을 차려 먹으며 일을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갔다. 딸은 나와 힘께 이른 저녁을 먹고 열 시에 잘 준비를 하기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이 적어서 내 일상에 별로 지장을 주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웹 디자인을 하는 둘째는 그동안 공유 오피스에 가서 일을 하다가 얼마 전부터 첫째의 오피텔을 작업실로 함께 쓰기로 했다. 언니의 침실에 책상과 의자를 새로 주문하고 아침에 둘이서 출근하다가 날씨가 추워지니 남편의 출근길에 함께 차를 타고 나간다. 다시 말하면 8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식구 세 명이 한꺼번에 현관문 밖으로 사라지는 마술이 생긴 것이다.


"나는 자유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샐러드로 시작하는 아침을 먹고 실내자전거를 사십 분 타면 그 뒤부터는 무한 자유의 시간이 펼쳐진다.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거나 미드를 보면서 혼자 있는 홀가분함을 마음껏 누린다. 빨래와 식사 준비에 시간을 좀 더 써야 하지만 어차피 내겐 넘쳐 나는 게 시간이라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딸들은 오전에 일을 하고 나면 둘이서 카페도 가고 고궁도 가고 전시회나 영화를 보며 재미나게 오후를 보내는 듯했다. 외향적인 언니와 차분한 동생은 마치 연인처럼 잘 맞아서 자매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 친구가 없는 딸들에게 아빠는 가끔 드라이브나 여행을 함께 하는 역할을 해야 해서 지난 주말엔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고성에서 하룻밤 자며 백담사를 둘러보고 왔다. 딸들과 하는 여행은 편하고 즐겁다. 수많은 개인기와 끼로 뭉친 첫째는 시종일관 높은 텐션으로 여흥을 돋우고, 차근차근하고 꼼꼼한 둘째는 모든 일정을 조율하며 아빠 대신 가이드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웃들의 얘기대로 남의 식구 없이 우리 가족만 있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엔 남편과 나는 시골집으로 가버리니 딸들은 자기들끼리 편하게 아파트 거실에서 지낸다. 일요일 밤에 우리가 돌아올 시간쯤에는 딸들이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놓고 집안 정리도 어느 정도 해놔서 나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해 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딸의 독립을 원했으나 반쯤 걸쳐진 지금의 동거 생활도 나쁘지 않고 모두가 적당히 편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 이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아침에 가족 세 명이 모두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이 마법은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골집에 놀러온 손님이 준 바구니와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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