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관하여
10여년 전에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을 하시는 미얀마 분을 멘토로 삼았었다.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을 하신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좀처럼 한국정부에게 난민 자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이었다. 그 분은 최근에는 이주 노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정식으로 한국에 머물 비자를 얻기 위해서 갑자기 미얀마 군부 정부를 반대하는 인권운동을 하는 경우도 여럿 본다며, 이같은 미얀마 사람들을 비판했다.
또 다르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얀마 난민의 모습은 태국-미얀마 간에 있는 난민캠프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이다. 원래 양곤에 살았다던 한 난민 학생은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양곤에서 멀리 떨어진 태국 북부의 난민캠프에 살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로써 난민이 되기를 선택해 난민캠프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일화들은 난민이라고 해서 불쌍한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세안의 난민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줬다.
한국에는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2023년 9월 기준으로 251만4000명에 이른다. 이 같은 꾸준한 증가에 2024년에는 외국인 비율이 5%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아세안 국가에서 이주노동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향후 정치적인 망명을 이유로 한국을 찾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된다. 실제로 2022년 9월을 기준으로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은 81만명이며, 매년 난민신청자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아세안 내 난민들은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본 글에서는 아세안 내 제도적 특성과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에는 많은 난민이 생겨났다. 한국의 인구와 같은 5천만명이나 전세계적으로 난민이 생겨났다 보니까 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해서 규정하는 제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1951년 7월 28일 유엔에서는 난민 협약(refugee convention)이라는 다자간 협의를 내놨다. 난민은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해서 난민이라는 이름의 개인들은 어떠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이 때에 난민을 받아들이는 각 나라들은 어떤 책임이 있는가를 분명하게 규정한 협약이었다. 이에 따라서 1951년 난민 협약에서는 난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A refugee as a person who owing to well-founded fear of being persecuted for reasons of race, religion, nationality, membership of a particular social group or political opinion, is outside the country of [their] nationality and is unable or, owing to such fear, is unwilling to avail [themself] of the protection of that country."
난민에 대한 정의부터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까지 규정한 난민 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149개 국가이다.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서 대다수가 가입한 것이다. 그러면 아세안 국가들의 난민 협약 가입 현황은 어떻게 될까. 현재 아세안 11개 국가들 가운데서 난민 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필리핀과 캄보디아 불과 두 나라에 불과하다.
최근 국제뉴스를 보다보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유혈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아세안 지역에서 일어나는 최근의 유혈사태는 찾아보기 힘들어, 간혹가다 미얀마 군부와 소수민족간의 유혈사태를 다루는 소식 정도이다. 그만큼 아세안 설립 이후로 아세안 국가들에게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아세안 지역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적은 난민 수를 배출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난민을 배출하고 있는 나라는 1위 시리아, 2위 베네수엘라, 3위 팔레스타인 순이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는 미얀마가 6위로 백만여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아세안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난민에 대한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태국은 지금도 많은 미얀마 난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태국의 난민 수용의 역사는 길다. 1945~1946년 사이에 있었던 프랑스-베트남 독립전쟁 때 발생한 베트남인 난민 7만명을 태국 정부는 받아들였다. 1950년대 초반에 태국 정부는 또 중국 국민당 당원과 그 가족들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태국 뿐만이 아니라 말레이시아 정부도 난민을 수용했는데, 민다나오(Mindanao) 섬을 주거지로 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슬람 정치 조직인 모로민족해방전선(the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에 가담한 수천명의 필리핀인을 196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에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아세안 지역의 난민문제를 크게 야기한 것은 3차에 걸쳐 일어난 인도차이나전쟁이다. 인도차이나전쟁은 좁게는 베트남이 3차에 걸쳐서 외세에 맞서서 벌여온 전쟁을 이르는 말이다. 1차는 1946년~1954년에 프랑스가 베트남을 재지배 하기 위해서 벌였던 전쟁이고, 2차는 우리가 흔히 베트남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전쟁으로써 1955년~1975년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이다. 마지막 3차 인도차이나전쟁은 1975~1991년 베트남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어서의 패권을 잡고자 벌인 전쟁으로써, 캄보디아내 친베트남 세력과 함께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그리고 수십년에 걸쳐서 벌어졌던 전쟁으로 인해서 3백만명이 넘는 난민이 생겨났다고 추산되고 있다.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망명을 하기도 했지만 역내적으로 가까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로 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난민에 대한 역사가 결코 짧지 않고,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음에도 아세안에서는 필리핀과 캄보디아 두 나라만 1951년 유엔 난민 협약에 가 부입하고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아세안 지역은 안정되어 세계 다른 지역보다 낮은 수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수치인 2016년부터 2021년까지의 UNHCR의 자료를 살펴보면, 1.5백만명의 난민만이 발생했을 뿐이다. 물론 대다수가 미얀마에서 발생한 난민이기는 하지만, 아세안에서 발생하는 난민의 특징이라고 하면 아세안이 그러하듯이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 언어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들 각각의 특성에 맞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역내에 발생한 난민을 받아들였다. 난민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럽고 망설이는듯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과 같은 노동력이 부족한 국가가 아니고서야, 어느 나라든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세안 각 국가들은 태국을 제외하고는 노령화 문제가 없다보니 굳이 난민을 받아들임으로써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세안 국가가 이처럼 난민문제에 조심스럽고 망설이는듯한 태도를 취하는 또다른 배경에는 1967년의 방콕 선언(the Bangkok Declaration) 때문이다. 이 선언의 원칙으로는 각 나라간에 간섭하지 않겠다(non-interference)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지배 받았던 역사 때문에 서로간에 무간섭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문제에 있어서도 ‘이렇게 하라'고 다른 나라가 간섭할 수 없는 문제이며, 어디까지나 아세안 각 국의 재량권 하에 놓여있다.
또 다른 아세안 국가들의 난민문제를 다룰 때의 특성은, 설혹 난민들을 자국내에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미국과 같은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 정도로 자신들의 나라에 머물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난민 문제에 관해서 적극적이지 않다보니 아세안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난민 문제의 정확한 수치들을 얻기가 힘들다는 점도 아세안 지역 내의 난민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1인당 GDP가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높은 싱가포르는 또다른 캘리포니아 드림을 찾아 찾아오는 동남아시아인으로 인해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이다. 2020년 중반 기준 싱가포르에 사는 이민자 수는 250만 명이 넘는데, 이는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43.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인구의 반이 이민자로 구성된 놀라운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난민에 대해서는 전혀 자비롭지 않아서, UNHCR에 따르면 2020년 난민 추정 인구난 단 한명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인신매매 잠재적 피해자 23명, 성 착취 피해자 16명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싱가포르는 1951년 유엔 협약을 가입하지 않았으며, 난민과 관련된 자국내 법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
싱가포르 정부가 난민 수용을 꺼리는 주된 이유는 싱가포르의 땅이 작아서 사람들을 더이상 수용할 수 없음을 이유로 든다. 언뜻 들어서는 납득이 되는 이유일 수도 있지만, 사실 싱가포르는 더 많은 인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이 된다. 싱가포르의 2013년 인구 백서에서는 2030년까지 전체 인구가 약 150만 명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늘어나는 인구를 받아들일만큼의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매립을 통해서 싱가포르의 영토 역시 늘어나고 있다. 물리적인 제약이 아니라 싱가포르 자국 내의 정책에 따라서 싱가포르의 난민 유입을 막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세안내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나라인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어떨까. 2022년 1월 말을 기준점으로 UNHCR 말레이시아에 등록된 난민은 약 181,510명이다. 이 중에서 155,610명이 미얀마 출신의 난민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이 같은 수치는 대폭 줄어든 수치로, 구금시설에 갖혀 있는 사람 등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난민들이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태국과는 다르게 난민캠프가 없다. 미국 등 제3국에 난민으로 받아들여져 재정착 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도심 지역사회에 수용중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말레이시아 역시 1951년 유엔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인데, 다만 말레이시아는 자국내 법을 통해서 난민에 대한 규정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57년 말레이시아 연방헌법과 1959~1963년의 이민법에서는 자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들을 불법체류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지역뉴스나 정부문서를 찾아보면 UNHCR로부터 인정받은 난민이라 할지라도 ‘불법체류자'로 명명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한 이후인 20세기에 크고작은 전쟁을 겪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3차례에 걸쳐서 일어난 인도차이나 전쟁으로써, 이 과정에서 약 300만명에 달하는 베트남와 캄보디아 같은 나라 출신의 난민이 생겨났다. 최근 근래에 있어서는 아세안 내 커다란 분쟁이 없고, 유일하게 미얀마에서 소수민족 분쟁으로 미얀마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렇게 난민에 대한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아세안이지만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 유명한 1951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필리핀 캄보디아 단 두나라일 뿐이다. 아세안은 유럽엽합과 달라서 사법기관이 없기 때문에 난민에 대해서 규정한 별도의 사법적인 장치나 제도가 없으며, 또한 1967년 방콕 선언이 가로막고 있다. 방콕 선언에 따르면 각 아세안 국가는 주권국가로써 다른 나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에, 난민문제에 있어서도 각자 나라의 재량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독일과 같이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난민을 노동인구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망설이면서도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Reference
김정현. 2022. “말레이시아 도심난민들의 건강권 현황과 과제” 『전동연 이슈페이퍼 22』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Jones, Evan. “‘Refugees not welcome here’: As ASEAN chair, Singapore must take the lead.” Hong Kong Free Press. 7 January.
https://hongkongfp.com/2018/01/07/refugees-not-welcome-asean-chair-singapore-must-take-lead/ (검색일: 2023. 12. 26)
UNHCR-Asia Pacific. 2022. “Figures at a Glance in Malaysia.” https://www.unhcr.org/figures-at-a-glance-in-malaysia.html (검색일: 2023. 12. 26.)
Wake, Caitlin and Tania Cheung. 2016. “Livelihood Strategies of Rohingya Refugees in Malaysia: ‘We Want to Live in Dignity.” HPG Working Paper. London: Overseas Developmen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