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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Oct 24. 2021

칭찬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한때, 나는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 ‘잘했어’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 말이 진짜 잘했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약간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마구 혼을 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말이었는데 아이들은 그 말을 진짜 잘했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막둥이가 4살 때의 일이었다. 시댁에 시 할머님의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모든 가족이 모여서 제사상을 차리고 있었다. 특히 네 살인 막둥이에게 제사상에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음식을 차리느라 바빴다. 큰 아이들은 여덟 살이라 말을 잘 알아들어 나의 걱정과 달리 방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는 아직 어려서 내 곁을 얼쩡거리며 제사상이 신기한지 자꾸 손대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 단속하랴 음식 준비하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남편이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바라보니 다른 제사 준비로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완성된 음식들을 상에 올리는데 내가 안쓰러웠는지 사촌 도련님이 음식 나르는 것을 도왔다. 막둥이는 그런 삼촌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이다 싶었던 순간 도련님이 대추를 상에 올리다가 와장창 쏟아버렸다. 그 순간 우리 막둥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


 “잘한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막둥이의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물론 진짜 잘해서 한 말은 아니었지만, 평소 내가 하던 대로 따라 하는 막둥이의 말에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우습기도 해서 같이 웃어버렸다.

 아이는 나의 말이 진짜 잘해서 하는 칭찬인 줄 알았나 보다. 평소 엄마가 하던 대로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비꼬는 뉘앙스의 ‘잘했다’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잘했다’라는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릇을 깨뜨리고 다치지 않아서 잘했어. 어질렀지만 함께 치우기 놀이를 할 수 있으니 잘했어. 물티슈 한 팩을 다 빼버렸지만 너의 호기심을 채웠으니 잘했어. 크림 한 통을 바닥에 다 쏟았지만 재미있게 놀았으니 잘했어. 싱크대의 냄비를 다 꺼내서 놀았지만 다치지 않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잘했어. 아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며 혼내기보다는 진심을 담은 ‘잘했어’라는 칭찬으로 아이를 안심시켰다. 


 아이는 모든 것을 몸으로 익혀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된다. 특히 남자아이는 더 그렇다. 아이는 그 후로도 많은 사고를 쳤다. 하지만 잘했다는 칭찬 후에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물으니 화가 나기보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어 아이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며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보다 아이를 이해하는 엄마가 되어갔다. 아이가 나를 성장시킨 것이다. 지금도 큰 아이들은 무언가 잘못했을 때 나를 보며 씩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 잘했지?’ 그럼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잘했어.’


 지금은 아이들이 정말 자기가 잘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나의 말에 안심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만약 내가 화를 내며 왜 그랬냐고 추궁을 했다면 우리 아이들이 실수하지 않으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며 실수해도 괜찮고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수해도 혼내지 않으니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나 스스로에게도 ‘괜찮아’, ‘잘했어’ 칭찬을 한다. 아이를 혼내지 않아서 잘했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줘서 잘했어. 그럴 때마다 바닥에 있던 나의 자존감은 한 단계씩 높아진다. 그러면 아이에게 더 잘하게 되고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나를 대하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나는 그런 것이 좋다. 사소한 일도 엄마에게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이 참 좋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세 아이를 키웠지만 세 아이 모두 칭찬을 들으면 정말 좋아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다. 나도 아이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는 정말 행복하다. 돈도 들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칭찬인데 우리는 왜 칭찬에 인색할까? 


사진출처-픽사 베이




 칭찬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를 살펴보자면 우리는 칭찬을 받는 환경에 살지 않아서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칭찬을 많이 받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서로 칭찬을 주고받는데 익숙할 것이다. 그럼 쑥스럽다는 이유로 칭찬을 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칭찬을 받는데 쑥스러운 것은 그만큼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칭찬을 했는데 그 칭찬을 어떻게 받아넘길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가령 ‘오늘 옷이 예쁘네요. 잘 어울려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가? 나는 예전에 이런 칭찬을 들었을 때 쑥스러워서 ‘아니에요.’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머, 그래요? 고마워요. 00 씨의 옷도 노란색이 들어가 화사하네요. 센스 있어요.’라고 칭찬해준 사람에게 한마디 건넨다. 그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만약 예전처럼 ‘아니에요.’하고 얼버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칭찬해준 사람도 ‘괜히 칭찬했네. 그냥 가만히 있을걸’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다. 1등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살다 보니 남을 칭찬할 여유가 없다. 남을 칭찬한다면 내가 아닌 남이 1등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1등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칭찬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남을 칭찬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칭찬하면 아이가 버릇이 없어질까 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아이가 버릇이 없어질까 봐 일부러 엄하게 훈육한다. 하지만 오히려 칭찬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잘하려고 한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오냐오냐해서 아이가 버릇이 없어지는 것이지 칭찬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왜 칭찬해야 해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인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수고했다”,”잘했다”라는 한마디를 건네주면 칭찬받은 사람은 다음에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즐겁고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그 간단한 말 한마디조차 없다면 그 사람은 다음에는 ‘그냥 대충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칭찬하면 안주할까 봐, 칭찬할 점이 보이지 않아서, 아첨 같아서, 해봤자 별 효과가 없을까 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칭찬을 하면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 칭찬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리라.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의 심부름을 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착하다’라는 칭찬을 해줬다. 다른 엄마는 아이에게 ‘00 이가 엄마를 도와줘서 엄마가 일을 잘 마칠 수 있었어. 고마워’라고 했다. 어떤 아이에게 칭찬의 효과가 더 클까? 당연히 후자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도와줌으로 엄마가 일을 잘 마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들었다. 칭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잘못된 칭찬 중 하나는 아이에게 칭찬의 대가로 상을 약속하는 것이다. “00 하면 00사 줄게.”라는 칭찬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해 행동하고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칭찬은 ‘착하다’, ‘예쁘다’ 등 아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칭찬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함으로 아이들이나 나나 얻는 게 더 많다. 돈이 들지 않는 칭찬으로 아이들과 나의 자존감도 높아지니 돈보다 더 큰 것을 얻는 것이다. 마음껏 칭찬하고 사랑하자. 아이들이 내 곁에 있을 때 마음껏 행복을 누리게 해 주자. 행복한 기억은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불쑥불쑥 떠올라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온전히 사랑받았다는 기억. 많은 칭찬으로 높아진 자존감에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작은 칭찬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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