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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Oct 24. 2021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주자

     



 민정이는 피아노 대회에 참가한 후에 상을 받음으로써 자신이 노력하면 그 뒤에 반드시 결실을 얻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성취감을 느낀 후에 주산, 암산 대회나 피아노 대회 등 성공의 기억이 좋은 느낌으로 남아 내가 시키지 않아도 많은 경험을 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바이올린 교습도 함께 받기 시작했다. 방과 후로 바이올린 수업을 들었는데 일대 다수인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아이 하나하나의 자세까지 봐 주실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피아노 학원에서도 바이올린 수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자세교정을 부탁드렸다. 바른 자세로 하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얼마 후 피아노 원장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민정이가 방과 후 교실에서 배운 것 치고는 실력이 좋아서 바이올린 대회에 내보냈으면 하는 바이올린 선생님의 의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의사를 물으니 여러 번의 성취감을 느낀 터라 바이올린 대회에 나가고 싶어서 했다. 아이의 의견대로 대회에 내보내기로 했다.       




 대회 당일 아이와 함께 대회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하게 출발하여 남편이 조금 거칠게 운전을 했는데 아이는 멀미가 난다며 힘들어했다. 처음엔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가 긴장으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엄마, 나 대회에 안 나가면 안 돼요?”


아이의 말에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얼마 전 원비 결제하러 학원에 들렀을 때 원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민정이가 잘하는데요. 바이올린 대회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피아노 대회 때는 학원에 매일 와서 연습하니 집에서 연습을 따로 안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바이올린은 아니거든요. 집에서도 연습해야 했는데 민정이가 연습을 조금 게을리한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서만 연습해서는 잘할 수가 없어요. 물론 민정이가 방과 후 수업만 들은 아이 치고는 잘하는 편이지만 바이올린은 연습해야 해요. 그래서 조금 혼냈어요.”



 자신감 결여. 그것이 문제였다. 평소 아이는 선생님께 인정을 받았다. 학교에서나 학원에서의 평가가 모두 좋은 편에 속했다. 선생님께 인정을 받은 아이는 무한한 신뢰 속에 쑥쑥 성장해 나갔다. 자신이 최고라 여겼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하니 아이가 조금 나태해진 경향도 있었나 보다.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했고 그에 대한 꾸중도 들었으니 아이가 의기소침해진 것 같았다. 그것도 대회 며칠을 앞두고 말이다.



 “대회처럼 무대를 만들어서 친구들 앞에서 연주도 했어요. 떨지 않고 근사하게 연주를 잘 하긴 했는데 연습을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고 민정이에게 얘기했어요. 민정이가 잘하긴 해요. 어머님.”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민정이를 지켜보았다. 나는 조용한 곳으로 민정이를 데리고 갔다.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민정아, 네가 단순히 멀미 때문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엄마는 네 뜻을 존중하겠어. 엄마, 아빠가 실망할 거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네가 대회를 나가든 나가지 않던 널 응원하고 사랑하니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네가 다른 이유로 대회를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아이가 피하고 싶은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앞으로 수많은 날을 이와 비슷한 일들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피해 다니고 도망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피하고 도망 다니는 것도 습관이다. 엄마라면 이럴 때 극복해 내는 힘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롯이 아이가 선택하게 했다. 피해 다니든 도망 다니든 나의 결정이 아닌 아이 스스로가 결정하게 만들어야 했다.



 “엄마, 앞에 나가면 소리도 못 낼 것 같아요.”

 극도의 긴장으로 아이는 바이올린 소리도 못 낼 것 같다고 두려움을 표현했다.

 “민정아, 쉽게 생각해봐. 여기 있는 아이 중에 네가 ‘나비야, 나비야’를 가장 잘할걸?”

 ‘나비야, 나비야’는 바이올린 교재인 스즈키 1권에 나오는 연습곡이었다. 

 아이가 울다가 픽 웃었다.

 “엄마, 내가 연주할 곡은 스즈키 5권에 나오는 곡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네가 ‘나비야, 나비야’를 이 대회에서 가장 잘할 거라는 얘기지. 주위를 둘러봐. 여섯일곱 살 먹은 아이들도 있잖아. 쟤들이 정말 연주를 잘해서 여기에 왔을까? 그동안 하나도 못하다가 연습을 열심히 해서 ‘나비야, 나비야’라도 잘하니까 와서 그 솜씨를 보여주려고 나온 거잖아. 처음엔 하나도 못했지만, 지금은 이만큼 할 수 있어요. 그걸 보여주는 자리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서 연주할 기회가 흔하겠어? 그냥 즐기는 거야. 못하면 어때? 상을 못 타면 어때?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나, 이만큼 잘할 수 있어요’ 하고 보여주는 거잖아. 엄마는 지금 네가 대회에 안 나간다고 해도 괜찮아. 하지만 민정아 생각해봐. 네가 나중에 '아, 그때 대회에 나갈 걸.' 그렇게 후회 안 할 수 있어? '열심히 연습했는데 괜히 떨어서 안 나갔네. 나보다 못하는 아이도 상을 탔네. 내가 나갔으면 더 좋은 상을 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럼 안 나가도 돼. 당장 집에 가자.”


 아이는 눈물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때 바이올린 선생님이 들어가야 한다며 우리를 찾았다.

 “민정아 결정해야 해. 안 하려면 지금 얘기해야 해.”

 아이는 눈물을 쓱 닦으며 말했다.

 “엄마, 해볼게요.”



 아이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남편과 공연장으로 들어가 대기를 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주하는 ‘나비야, 나비야’를 들으며 나는 민정이가 잘 해내리라 믿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민정이가 연주하기 전까지 수많은 아이들이 연주를 했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나비야, 나비야’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렇다고 초급 수준의 아이들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정말 실력이 뛰어난 아이도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그들의 노력에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렇게 연주할 정도면 연습을 얼마나 했을지 어른인 내가 봐도 정말 놀라웠다.

 이윽고 민정이 차례가 돌아왔다. 한눈에 보아도 ‘나 긴장했어요’라는 기운을 뿜으며 민정이가 무대로 나왔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출근했다. 근무 중에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1등 대상, 2등 세종 경제신문 사장상, 3등 준 대상, 4등 차상, 5등 특상. 강민정 세종경제신문 사장상 2등 축하합니다.”

 문자를 다 확인하기도 전에 피아노 학원 원감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어머님, 문자 확인하셨지요? 민정이가 하도 긴장해서 소리도 못 낼 줄 알았는데 너무 기특해요. 교수님들이 채점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평가 글도 남겨주셨는데 민정이가 발전 가능성이 많은 아이라고 하셨어요. 축하드려요. 민정이 많이 칭찬해주세요!”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마음이 벅찼다. 아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나가서 연주했다는 사실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아이라는 그 문구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남들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지만 내 아이가 앞으로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더 기쁘게 다가왔다. 아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대회에 안 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어요. 고마워요. 엄마.”

 아이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엄마는 네가 더 고마워.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서 장해.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엄마.”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 앞에서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난관을 이겨내고 극복해 낼 것이다. 난관을 극복해 내는 힘을 길러주고 응원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엄마라서 기쁘고 행복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성장을 한다. 아이도 자라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깨닫는다. 엄마가 옆에서 참견하고 결정해 버리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엄마에게 의지해 버린다. 한두 번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어버린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아이들은 ‘몰라쟁이’라고 한다. 어떤 질문을 하던 대답은 다 ‘몰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어른들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다 해줘 버릇하니 자신의 의사 없이 부모의 인형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해주기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아이는 우리 생각보다 강한 존재이다. 부모는 큰 믿음으로 응원하며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아이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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