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이 담긴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별일 있겠어?' 하고 넘겨버렸는데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조금 더 선생님의 말씀을 유념하고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단단히 대비했어야 했다.
나는 요즘 강제 갱년기를 겪고 있다. 왼쪽 난소의 혹을 제거한 이후 자궁내막증과 선근증을 치료하고 있다. 주사와 약을 처방받아 강제로 월경을 멈춘 상태다. 그에 따른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감정이 널을 뛰는 듯 마구 바뀌고 몸마저 내 의지대로 안된다. 춥다 덥다를 반복하고 그에 따른 급격한 체력 변화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몸도 내 몸이 아니고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좋았다, 싫었다를 반복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해도 마치 누가 나의 마음을 조종하는 듯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여지는 일이 다반사다.
정말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울컥울컥 화도 치밀어 오른다. 예전엔 사소한 일로 화를 잘 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사소한 일로도 예민하게 굴며 화를 낸다. 어떨 때는 정말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봐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엄마는 왜 '미안해' 안 해요”
“응?”
“아까 엄마가 나한테 화냈잖아요. 내가 속상한데 나한테 '미안해' 얘기해야지요.”
나는 머쓱해져 버렸다. 조금 전에 설거지하는데 아이가 계속 무언가를 내게 요구했다. 그래서 설거지를 끝낸 후 봐주겠다고 했는데 몇 번에 걸쳐 나를 독촉했다. 한 번, 두 번 봐주다가 자꾸 귀찮게 하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버렸다. 의도치 않았는데 아이는 마음이 상했었나 보다.
“엄마가 한빛이를 속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용서해 주겠니?”
한 번씩 무언가를 놓치면 아이가 내게 와서 말해준다. 그럼 나는 꾸중을 앞두고 선생님 앞에선 학생 같은 기분이 든다.
“네. 알겠어요.”
아이는 나의 사과를 받고 나서야 숙제를 끝마친 듯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잘못해도 사과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아이들의 실수는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실수는 사소한 것이라고 여겨 사과도 하지 않고 대충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 아이와의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신뢰를 얻는 건 어렵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므로 우린 아이와의 신뢰를 깨지 않도록 노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혼내고 아이들에게서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아이들을 닦달한다. 아이들도 충분히 생각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오히려 아이들보다 깔끔하지 못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할 줄 모른다. 왜 그럴까? 이는 어른들은 사과하면 자신이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과한다고 지는 것이 아닌데 잘못된 인식으로 사과=잘못이라는 공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과=화해라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져야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딛고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사과와 화해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 일이 마음에 앙금으로 남는다. 새하얀 도화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지우개로 아무리 깨끗하게 지운다고 해도 도화지에 연필 자국이 남는다.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소한 상처를 낸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주기 전처럼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 일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을 자꾸 표현하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그 상처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하면 체면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사과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체면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아이의 다친 마음에 연고를 발라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치료를 해야 한다.
'너를 잘 이끌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의도를 엄마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조금 더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도 더 노력할게. 우리 함께 더 잘해보자'라고 사과하고 다독여보자. 그러면 아이의 상처에는 새살이 올라 전처럼 말끔히 치료될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과를 받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른과 아이라는 관계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받는다는 사실에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자. 아이의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높아지지 않는다. 작은 그림이 모여 큰 그림이 되듯 사소한 일들이 모여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자양분이 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야 한다.
우리 집에는 규칙이 있다. 한 가지 일로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그 일은 모두 할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이 한 대의 노트북으로 서로 게임을 하려고 싸우기에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아서 모두 게임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자 세 아이는 굳은 표정이 되어 서로의 탓을 했다. 반성은 하지 않고 서로를 탓하는 모습에 나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모두 그만! 오늘은 노트북 금지!”
아이들이 날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각자 할 일 해!”
나는 아이들의 입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아버렸다. 아이들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각자 다른 할 일을 찾았다. 나는 나대로 불편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다. 잠시 후, 세 아이를 불러 사과도 하고 마음을 다독여줬다. 큰 아이들은 표정이 풀린 듯 보였는데 막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따로 물어보았다.
“아직도 화났니?”
그러자 아이는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미안해’ 하면 금방 화가 풀려요?”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아이의 마음이 풀릴 시간을 줘야 하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왜 화를 풀지 않냐고 독촉한 꼴이 되었다.
“미안해. 엄마가 한빛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 빨리 물어봤구나. 엄마가 한빛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게. 한빛이 마음이 괜찮아지면 엄마에게 말해주겠니?”
“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어른들도 이견이 있을 때 대화를 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 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기다린다.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지 화가 났다든지 하면 기분을 풀 시간을 줘야 한다. ‘미안해’라고 말하고 금방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점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이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 남은 앙금을 털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아이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고 상처를 낫길 기다려야 하듯이 마음의 상처도 사과하고 회복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과한다고 마법처럼 뚝딱 금방 괜찮아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금방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사골국도 오래 공을 들여 끓여야 진국이 되고 밥도 뜸을 들여야 더욱 맛이 좋아지듯 아이의 마음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른이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참을성이 더 많다. 그러니 우리가 기다려줘야 한다. 어른도 아이에게 잘못하면 사과를 하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자. 그만큼 아이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고,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