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 베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 그림을 놓고 어린 왕자가 어른들에게 무슨 그림 같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을 본 어른들은 모자 그림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눈에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그림이다. 어른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려 하지 내면의 모습까지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어린 왕자가 아이들의 전부를 대변할 수 없지만, 어른들의 현실적인 시각과 아이들의 상상력이 가득 담긴 시각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가 의도한 대로 보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의도를 담고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아이가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잘하면 곧 그 분야의 천재가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다가 주위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고 더 잘하라고 닦달을 해 댄다. 그렇게 되면 흥미를 느끼고 잘하다가도 엄마의 지나친 기대와 압력에 좋아하는 것을 멈춰버린다. 이는 아이에게 독이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아이를 임신하면 우리는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있는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나길 바란다. 아이가 태어나면 해당 월령별 신체발달대로 고개를 가누고, 몸을 움직이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걷길 바란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길 바라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란다. 이때는 아이에게 교육적인 어떠한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 엄마는 욕심이 생긴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주위의 아이들과 비교가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이 커지는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마음은 지옥이 된다.
‘우리 아이가 더 잘할 수 있어!’ 어떤 엄마든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생각은 할 수 있는데 그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누구네는 얼마짜리 전집을 들였다더라’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엄마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부담되는 가격의 전집을 다른 집 엄마보다 더 사서 읽혀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고민하던 찰나에 만난 영업사원은 여러 전집과 프로그램을 돌리면 아이를 영재로 만들 수 있다고 부추기며 엄마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책을 사지 않으면 엄마가 아이를 망치는 것으로 몰아간다. 전집 살 돈도 없다니 아이가 불쌍하다고 동정을 하기도 한다. 그게 영업사원의 전략임을 알면서도 엄마는 카드 할부를 이용해서라도 전집을 구매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를 미리 신청하면 서비스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아직 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어다니라고 강요할 준비를 한다.
사진출처-픽사 베이
책이 도착하고 집에 분란이 일어난다. 아빠가 보기에 지금 필요하지도 않은 책을 왜 샀냐고 하고 엄마는 아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한다. 아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남편은 큰 소리가 나길 원치 않는다. 책을 많이 읽어서 나쁠 것 없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더이상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엄마는 한동안 열성적으로 책을 읽어준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열심히 보는 것 같다. 엄마는 비싼 돈을 들여 책을 잘 샀다고 자신의 결정을 칭찬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읽어주다가 포기한다. 육아 피로도도 심하고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먼지가 쌓이고 카드 고지서가 날아오면 그제야 후회를 한다. 잘 읽어주지도 않는 책을 거금 들여 왜 샀을까 후회를 하는 것이다. 아까워서 다시 읽어주지만 아이는 책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면 엄마는 본전 생각에 아이 앞에 책을 들이민다. 아이는 호기심에 반짝하지만 아직은 책 보다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 처음에 집중을 잘해서 천재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책보다는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실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천재가 아니었어’
나도 아이를 키우며 전집을 샀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전집이라고 소문난 저렴한 책들을 샀다. 아이들은 비싼 책인지, 저렴한 책인지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 내용이 나오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내용이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좋다고 소문난 책도 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것이 아니다. 좋다고 소문난 전집 중에서도 아이들은 몇 권의 책만 좋아하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책을 좋아한 예도 있었다. 수많은 아이는 모두 다르다. 내가 쌍둥이를 키웠지만, 우리 아이들도 외모만 비슷할 뿐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달랐다.
아이의 키가 아이의 시선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어른의 키 높이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제 속도에 맞춰 잘하고 있다.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아이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속도를 인정하지 않고 어른의 속도로 달리라고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다. 어른의 속도에 맞춰 잘 따라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면 기대치가 높아져 더 잘하라고 한다. 잘한다는 칭찬에는 인색한 채로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살던 외가는 방이 세 개짜리 아파트였다. 그때는 너무도 넓게만 느껴졌다. 방 3개에 부엌,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다. 그때는 평수도 몰랐고 그냥 ‘외가가 좋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준에 외가는 넓은 집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큰삼촌, 큰 외숙모, 이모 두 명, 삼촌 한 명, 사촌 동생 두 명, 나와 동생까지 복닥복닥 하게 살았다. 그때는 좁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아이의 시선과 어른이 시선이 이렇게 다르다. 그러니 어른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얼마나 다를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엄마의 시선으로 아이를 보면 안 된다. 아이의 키에 엄마도 키를 낮춰 아이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아이가 한살이면 엄마도 한살이다. 아이가 열 살이면 엄마도 열 살의 키 높이에 맞춰 아이를 봐야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인 아버지 귀도가 자기 아들 조슈아를 지켜내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지금 게임을 하는 거라고 얘기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승자가 되고 승자가 되면 탱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온갖 고비를 겪으며 결승점에 다 왔다고 느끼는 순간 유대인 수용소의 흔적을 없애려는 군인들에게 아빠가 끌려가게 된다. 아빠는 아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러 가면서도 즐거운 척 행동한다. 아빠의 당부대로 수용소가 조용해지자 숨어있던 곳에서 나온 조슈아는 미국 군인에게 발견되고 탱크를 타고 엄마를 만나게 된다. 어른의 시선에서 본다면 한없이 슬픈 이야기인데 아이의 시선에서는 아빠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훗날 아이는 아빠의 절절한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차이를 알고 간극을 줄여야 한다. 아이가 그 차이를 줄일 수 없어도 어른인 우리가 그 차이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과거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위의 사소한 모든 것들부터 놀잇감이었으며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소꿉놀이할 때는 들판의 모든 풀이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되었으며 버려진 나무판자도 근사한 집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작은 돌멩이마저도 보석을 품고 있는 진귀한 원석이었으며 물가에 버려진 초록색 돌은 버려진 사이다병이 마모된 것이 아닌 에메랄드였다. 우리도 과거엔 지금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순수한 어린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고 철들면서 우리가 꿈꾸고 상상하던 세상은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의 순수함을 잃고 어른이 되었다. 아이가 어른의 시선으로 보라는 것은 아이에게 빨리 철들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나는 아이는 아이 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아이가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나도 더욱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의 시선에서 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우린 엄마다. 강한 엄마. 우린 충분히 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