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누나들 얘기만 들어줘?”
설거지하고 있는데 한빛이가 와서 내게 묻는다.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했는데 누나들의 말이 어찌나 빠른지 한빛이가 끼어 들 틈이 없었다. 말 많은 열두 살 소녀들의 틈에서 네 살 어린 한빛이가 끼어들기가 쉽지 않은 듯 했다. 서운한 기색이 가득해서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한빛이와 눈을 맞췄다.
“그래서 한빛이가 서운했구나? 엄마가 한빛이 얘기를 안 들어줘서 미안해. 엄마가 누나들 말에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 한빛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지금 엄마가 들어줬으면 좋겠니?”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한빛이를 돌아보자 조금 환해진 얼굴로 내 옷을 잡아끌었다.
“응. 지금 나랑 얘기해. 오늘 태권도장에서……”
아이는 오늘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살 차이의 말 많은 누나들에게 치여서 상대적으로 말이 느린 남자아이는 엄마와의 시간을 갖고 싶었나 보다. 그 뜻을 읽고 아이를 대해주니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나는 아이가 셋이다. 그렇다 보니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챙겨주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내게 와서 요구하면 그때그때 대처를 한다. 하지만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처럼 내게 와서 이렇게 저렇게 요구를 하는 아이를 더 챙겨주게 된다. 그래서 어쩔 땐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반성하게 된다. 내일은 큰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줘야지. 내일은 둘째에게 이 상황을 이렇게 하자고 얘기해야지. 내일은 막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등등. 하지만 아침이 되면 어제의 결심들은 잊히게 된다. 또 그때의 상황에 휩쓸리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나중으로 미루게 되면 못하게 되니 그때그때 1, 2분의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자고. 그 후로 아이들이 내게 와서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면 바로바로 대처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1, 2분의 시간을 더 내어 칭찬을 해주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엄마, 제가 선거를 도와줬던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갔던 친구가 부회장이 되었어요.”
5학년이 되니 전교 부회장 선거를 하는데 친구가 민정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준비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는데도 자신이 도와준 친구가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마치 내 일처럼 응원하고 기뻐해 주는 민정이가 너무 예뻤다.
“민정이가 도와준 친구가 전교 부회장이 되어서 기뻤구나. 엄마는 민정이가 친구를 위해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준 일이 참 기특하고 대견해.”
그리고 아이를 안아주며 귀에 속삭인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큰 딸내미.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
마지막 말은 다른 아이들이 안 듣도록 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아이 모두에게 엄마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른들도 칭찬을 들으면 쑥스럽긴 하지만 기분이 좋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칭찬을 받을만하면 칭찬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되새겨주는 것도 좋다.
워킹 맘은 전업주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짧다. 퇴근 후 저녁 먹이고 간단하게 설거지하고 아이들 숙제나 알림장을 챙기다 보며 어느새 잠잘 시간이다. 아이들과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면 아이들 취침시간이 짧아지니 대화할 새도 없다.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그러니 아이들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도 다 들어줄 수 없게 된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쉬기로도 하면 좋은데 나는 일의 특성상 주말에 쉬지 못하고 평일에 쉰다. 평일에 쉬게 되니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정대로 움직이고 나도 내 볼일을 보다 보니 아이들과의 시간이 너무 짧고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간혹 주말에 쉬긴 하지만 그것도 내 일을 보려고 쉬는 거라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어서 미안했다.
어느 날 민지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쉬는 날에 우리 놀러 가자.”
예전엔 주말마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게 일상이었다. 박물관, 도서관, 놀이터 등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심어주려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돌아다녔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또 엄마와 어딜 놀러 갈지 고민하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은 주말 내내 집에 있거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게 전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불만이 많은 듯했다.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롤러장도 가고 싶어.”
엄마보다 친구들을 한창 좋아할 나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알았어. 조만간 시간을 내볼게. 미리 생각해 두렴.”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에 아이들을 언니네 아파트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 먹이고 놀리자고 말이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퇴근 시간에 바로 데리러 갈 테니 준비해 두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저녁 먹고 논다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방학이라 늦게까지 놀려도 되니 부담이 없어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미리 만나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합류하자 더 기뻐하며 놀았다. 엄마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수다 꽃을 피웠다. 이사 전 동네에서 알게 된 엄마와 아이들인데 모두 성격들이 좋아서 편하게 어울리기 좋았다. 아이들끼리도 큰 다툼 없이 배려하고 잘 지내는 편이라서 만나도 늘 마음이 좋고 편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어제 만난 듯 아이들은 잘 어울리고 즐거워했다. 육아 고민을 나누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간 나 혼자만의 고민이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누니 해결책도 찾을 수 있었다. 가끔 이렇게 마음을 풀어놓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내 복인 것 같다. 나도 이런 힐링의 시간이 필요한데 아이들은 어떠할까. 아이들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 게스트하우스가 1층 독립건물이어서 주위 신경을 안 써도 되어 아이들도 마음 편히 놀았다. 시간이 가는 게 아까운지 자꾸만 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다음번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너무도 신나게 놀아서 돌아오는 차 안에선 아이들이 잠들 거라 생각했는데 쌩쌩하기만 했다.
“엄마, 내 얘기 들어주고 친구들과 놀게 해 줘서 고마워요.”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속이 깊다. 세세히 신경을 못 써줘서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신경을 못 써준 부분 말고 신경을 써 준 부분에 감사한다.
“엄마한테 놀러 가고 싶다고 투정 부린 거 죄송해요. 엄마가 안 해준 게 아니고 못 해준 건데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엄마가 우리한테 신경 많이 써주시는 거 알아요. 고마워요.”
엄마가 가장 기쁠 때는 인정받을 때다. 그 누구도 아닌 아이들에게 인정받을 때다. 아마 아이들도 마찬가지리라. 아이들도 엄마한테 인정받을 때 가장 기쁠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도 엄마가 노력하는 것을 알고 아이도 엄마의 노력에 화답한다. 아이와 엄마는 함께 자라고 성장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아이는 올바르게 성장한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뜻을 알아차리고 함께 성장하는 게 육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