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미리 연습할 새도 없이 ‘갑자기’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다. 이론적으로 막연히 아는 것과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알 수 있는 체득된 경험은 큰 차이가 있다. 갑자기 엄마가 되고 보니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왕이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자신의 삶보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일 것이다. 엄마의 엄마가 그러했고 우리의 엄마가 그러했다. 그게 좋은 엄마라는 미덕으로 여겨져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그게 과연 좋은 엄마일까?
요즘은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일에 치여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수 없을 때는 죄책감마저 든다. 아이를 하원 시키려 정시 퇴근할 때는 눈치가 보인다. 도대체 어느 것 하나 맘 편하게 할 수 없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좌불안석 마음이 불편하고 도움받을 시가나 친정이 없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가정 경제를 생각하면 그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전업주부는 마음이 편할까? 그렇지 않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시켜주지 못할 때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나 고민도 된다. 하지만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직도 어렵고 자신도 없다. 일하는 엄마들이 자신의 경력을 쌓으며 일과 육아를 멋지게 해내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내가 주체되는 삶이 아닌 ‘누구 엄마’라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지 고민된다.
직장맘, 전업맘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나쁜 엄마이고 누가 좋은 엄마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두 엄마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이 최선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나쁜 엄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 아이 모두 모유 수유를 했다. 그 당시에 모유 수유 열풍이 불어 완전한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들은 나쁜 엄마 취급을 받았다. 엄마가 건강상의 이유로 약을 먹는다거나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완전한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는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로 취급되었다. 지역에서 주최하는 우량아 선발대회에서도 모유 수유 여부를 물었다. 그런 것을 묻는 것은 그 사항이 점수에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는 좋은 엄마이고 분유를 먹이는 엄마는 나쁜 엄마일까?
‘천사 엄마’와 ‘악마 엄마’가 있다. 이 단어를 들으니 바로 떠올려지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내 기분이 좋을 때는 천사 엄마이고 내 기분이 나쁠 때는 악마 엄마이다. 하지만 천사 엄마와 악마 엄마는 ‘나’ 한 사람이다. 때에 따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고 나쁜 엄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과도한 육아 책임에 시달린다. 좋은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머리에 콕 박혀있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면 좋은 엄마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를 침대에서 떨어뜨렸어요. 죽고 싶어요.’
‘아이에게 먹일 모유량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가에게 너무 미안해요.’
‘내 몸도 힘든데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 집어던지고 싶어요. 내가 미친 걸까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는 나쁜 엄마인가요?’
엄마들은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이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에게만 과도하게 육아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지금 이 사회에게 책임이 있다.
부부가 함께 나누어야 할 육아와 가사를 모두 엄마에게만 강요하고 있다. 출산으로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엄마에게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루 24시간 오롯이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중압감은 처음 엄마가 된 사람이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엄마가 되기도 버거운데 사회는 좋은 엄마가 되기를 강요한다. 좋은 엄마가 되지 않으면 낙오자처럼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니 엄마는 자꾸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회복되지 않은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신다. 그런데도 아이를 돌보고 모유 수유도 해야 하고 가사도 해야 한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비난의 시선으로 쳐다본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정말 우울하고 우울하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호르몬 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자꾸만 울고 싶고 우울하고 심할 때는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걸까? 나는 단지 출산을 했을 뿐이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수많은 고민으로 번뇌하고 있을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도하게 강요된 좋은 엄마에 대한 기대치로 자신을 갉아먹지 않길 바란다. 좋은 엄마=완벽한 엄마라는 공식을 강요당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엄마들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엄마라는 틀 안에 당신을 가두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 ‘나쁜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걸으라고 응원하고 싶다.
아이와 행복을 나누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불안하고 좌절하며 보낼 것인가, 아니면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보낼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과감하게 ‘좋은 엄마’라는 사회가 심어준 기대치를 벗어던지고 그냥 평범한 ‘엄마’가 되어보자. 당신은 엄마다. 굳이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좋은 엄마’ 일 필요는 없다. 아이에겐 지금 당신 그대로가 최고의 엄마다.
‘엄마’라는 단어는 소리 내어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련하고 짠하고 애잔해지는 단어다. 나에겐 특히 그렇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그래서 내게 엄마라는 단어는 눈물부터 나오게 하는 단어다. 나는 내가 느끼는 엄마라는 단어에 담긴 감정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엄마라는 단어는 밝고 포근하고 행복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노력한다. 내가 노력하듯이 당신도 노력하길 바란다. 당신의 아이에게 엄마라는 단어가 어떠한 느낌으로 전해질 지를 당신도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느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럼 답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엄마’라는 틀을 부수자. 그 틀을 깨고 나와 당신이 원하는 인생을 꿈꾸고 아이와 함께 당신의 꿈과 희망을 나누어보자. 아이는 우리가 무조건 돌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꿈을 꾸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아니 동생, 언니, 오빠, 엄마, 아빠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아이가 당신에게 어떠한 존재로 자라날지는 당신이 가진 틀을 깨고 나와야 알 수 있다. 틀을 깰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당신의 용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