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바보 아니야!”
아이는 버럭 화를 냈다. 아이는 말의 뉘앙스보다 ‘바보’라는 말의 뜻을 알고 화를 냈다.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엄마가 앞으로 바보라는 단어는 안 쓸게.”
내가 사과했지만 아이는 분이 안 풀린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더불어 나의 마음도 안 좋았다.
요즘 아이와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의 계획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한글에 통 관심이 없길래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시작하려고 미뤘더니 지금에 이르렀다. 아이는 자신이 필요한 단어들만 익혔고 내가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알려주려 얘기만 꺼내도 줄행랑을 쳐 버렸다. 강요하면 거부감만 들까 봐 한글 공부를 미뤘더니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큰아이들은 내가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쌍둥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모두 익혔다. 그래서 내가 한글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당연히 한빛이도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누나들처럼 한글을 잘 깨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쌍둥이들은 여자아이고 한빛이는 남자아이라는 사실 말이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들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들에 비해 언어발달이 느리다. 그래서 어느 교육자는 남자아이들은 한글을 늦게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교육은 남녀가 아닌 나이별 교육에 맞추다 보니 그 교육자의 주장에 맞춰 교육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금은 교과과정이 달라져서 유치원에서 한글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알게 되니까. 빠르고 늦음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학기 초 상담시간에 나의 고민을 담임선생님께 털어놓았더니 선생님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셨다. 교과과정이 바뀌어 기초부터 가르치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도 한글을 다 아는 친구들은 몇 안 된다고 본인이 잘 지도하시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큰 걱정을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읽기 급수 표’를 내밀었다.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거라고 집에서 읽기 급수 표를 엄마와 공부해 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고 했다. 처음엔 몇 자 안 되는 쉬운 글자들이라 아이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라 꼭 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
날마다 숙제를 내주셔서 아이와 글자를 읽었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도 쉬운 글자를 자꾸만 틀렸다. 모음과 자음의 조합을 차근차근 알려주려고 하면 아이는 알고 있는 글자라고 하며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했다. 몇 차례 씨름하다가 그냥 선생님께서 주신 급수 표로 숙제를 하며 익혀나갔다.
아이와 한글 공부를 하고 있자니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금방 알려주어도 다른 소리를 해 댔다. 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아이는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한숨이라도 내쉬면 ‘엄마, 나 때문에 화났어?’라고 물으며 눈치를 본다. 그러면 아니라고 엄마가 마음이 답답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다시 글자를 손으로 짚었다. 다시 시작한 읽기 공부. 나는 자꾸 목소리가 커졌고 아이는 자꾸만 작아졌다.
유치원을 같이 다닌 아이 친구 엄마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그 집 아이는 한글을 떼었나 슬쩍 물어보니 학교 입학 전에 억지로 가르쳤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한다. 한글 공부할 때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엄마와 한글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집이나 똑같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어떻게 아이와 재미있게 한글을 익힐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신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귀신’ 같은 같은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을 같이 이야기해 주며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단어들을 연상시켜주었다. 아이는 곧잘 떠올리며 잘 따라왔다.
하지만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니 내가 불러준 단어를 순서대로 외워서 먼저 말하기도 했고 글자를 대충 보고 눈치껏 맞추기도 했다. ‘기린’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기’ 자만 보고 앞에 나온 ‘기분’이라는 단어를 먼저 말했다. 그래서 글자를 보라고 아이를 자꾸 꾸중하게 되었다. 몇 번 아이에게 똑바로 하라고 했더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 때문에 짜증 나?”
이게 뭐라고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했나 싶어 속상했다. 이게 뭐라고 아이가 눈치를 보게 만드나 싶어 미안했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 속마음은 괜찮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뜨끔했다. 지인의 딸이 여덟 살에 한글을 모른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아이는 금방 익힐 거라고’ 얘기해줬는데 지금 내가 그 엄마의 입장이 되니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1학년이 끝날 때까지 한글을 익히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은 아이가 해결해 주었다. 한 급수마다 다섯 번을 연습했는데 다섯 번째는 거의 잘 읽었다.
급수가 올라갈 때마다 나는 아이 덕분에 화도 냈다가 웃기도 했다. 아이가 ‘문지르다’라는 단어를 잘 읽기에 그냥 넘겼는데 다음번에 또 읽을 때는 머뭇거렸다. 그래서 아이의 무릎을 손으로 문지르며 ‘문지르다’라고 알려주었는데 다음번에 그 단어 앞에서 아이가 ‘뭐지 뭐지?’하며 머뭇거렸다. 그래서 무릎을 문질렀더니 ‘나, 알아!’ 하며 아이가 내뱉은 말. ‘비비다!’ 아이고 아들아!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 남은 단어들을 읽는데 아들의 엉뚱함에 웃음이 저절로 났다.
“엄마, 왜 자꾸 웃어?” 묻기에 “한빛이와 공부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라고 대답했더니 아이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진다.
어른들도 지적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고 움츠러든다. 화도 나고 속상하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하물며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게 혼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아이는 움츠러든다. 자꾸만 작아지고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자꾸 아이를 꾸지람하면 그간의 노력이 다 소용없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하라는 게 아니다. 아이를 꾸중하는 환경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를 혼낼 것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예측은 엄마가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이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를 미리 파악해서 아이가 그 행동을 하지 않을 상황을 만들면 된다.
‘기린’이란 단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앞에 나온 ‘기분’이란 단어를 먼저 말한 아이가 똑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해서 아이를 꾸중했는데 다음번엔 생각을 전환했다. 아이가 ‘기’ 자를 보고 ‘기분’을 얘기했을 때 나는 칭찬을 했다.
“그래. 기분에도 ‘기’ 자가 들어가지. 기차에도 '기'자가 들어가고. 기역에도 '기'자가 들어가. 그럼 이번엔 ‘린’ 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얘기해 볼까? 머리를 헹구는 ‘린스’ 또 어떤 단어가 있을까?”
그러자 아이는 신나게 ‘탬버린’을 외쳤다. 나는 떠올리지 못했던 단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칭찬해주었다. 아이는 신나서 다른 단어들을 줄줄이 말했다.
임신부들이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와서 게시판에 질문 글을 올린다.
‘아이가 주 수에 비해 작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요?’
‘어떻게 해야 아이를 크게 키울까요?’
그럼 흔히 나오는 대답이 있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세요.’
나는 저 말이 비단 아이의 체중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한다. 아이의 몸과 마음 모두를 잘 아울러 조화롭게 잘 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꾸중으로 작아지는 아이를 만들지 말고 열린 사고를 하는 큰 아이로 키우자.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