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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Oct 22. 2021

매일 반성하는 엄마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옆집에 미친년이 산다고 하겠다.”



 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한참 후 마음이 조금 진정된 상태에서 나는 저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한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유독 작은 틀 안에 생각이 갇혀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 없이 단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화가 났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웃 사람들이 옆집에 미친년이 산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자주 소리를 질러댔다. 




세 아이 독박 육아,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집,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늘어나는 생활비, 교육비. 노력하지만 항상 제자리에 있는 나의 상태, 은근히 부담을 주는 남편의 맞벌이 권유. 유전병으로 늘 피곤함을 느끼는 저질 체력. 나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했다.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는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미친년처럼!



 하지만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나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뿐이었다. 내가 소리를 지를 때는 화가 극에 달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없을 때였다. 화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나의 화를 어떤 방법이든 표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화가 났다는 나의 마음 상태를 소리 지름으로써 표현을 한 것이다. 소리를 질러서 내가 화가 풀렸거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엔 소리를 지르면 해결되었던 일들이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소리를 질렀는데 내성이 생긴 아이들은 ‘또 엄마가 시작이구나.’ 그런 표정으로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리를 질러서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었는데 계속 반복되자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를 발견하며 스스로 자책했다. 어느 순간엔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는데도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소리 지르기를 멈출 수 없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처음엔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섭게 행동함으로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었다. 내가 소리를 질러도 아이들은 점점 더 나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잠시만 참으면 엄마가 화를 내지 않을 거다’라고 생각한 듯 참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더욱 안 좋은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안 좋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때리겠다는 협박이 담긴 행동으로 아이에게 겁을 준 것이다. 아이를 향해 손을 올렸다. 아이는 움찔했다. 그리고 나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깊은 후회를 하게 되었다. 아이와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기지개를 켜려고 무심코 팔을 들어 올렸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몸을 움찔거렸다. 순간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과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안아주고 사과를 했다.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라도 엄마는 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그동안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이에게 말하고 잠자리에 누워서 수없이 반성했다.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아마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무심코 한 나의 행동으로 아이게 상처를 주고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자책을 했던가. 하지만 그런 반성도 얼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면서 수많은 문제와 부딪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수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니 말이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하지만 잘못된 훈육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점차 쌓이면서 아이와 나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온다. 엄마에 대한 아이의 신뢰가 깨지기도 하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아이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누구보다도 신뢰해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한번 어그러지면 다시 되돌리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잘못되기 전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그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분은 나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현명하고 행복한 육아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나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댁에서 자랐다. 외삼촌 댁엔 결혼하지 않은 이모와 삼촌들이 있었다. 나는 둘째 삼촌과 잘 부딪히는 편이었다. 삼촌은 몸이 조금 불편하셨고 그로 인해 자존감도 낮은 편이었다. 내가 어려서 그 당시 둘째 삼촌의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의 둘째 삼촌은 소리를 잘 지르는 분이셨다. 그리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시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사춘기 시절에 둘째 삼촌과 부딪혔던 적이 여러 번이 있었다. 나는 삼촌의 폭언과 폭력 앞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그때마다 결심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노라고. 둘째 삼촌도 자신의 고단한 인생으로 인해 내재한 화가 많았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둘째 삼촌을 이해해 보려고 돌이켜 보니 삼촌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용서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나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환경이 아닌 소리 지르고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둘째 삼촌의 모습이 나에게 드러날 때 나는 나 자신을 지독하게 증오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비난을 했다. 가장 닮기 싫은 사람을 닮아가는 내가 싫고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나의 힘듦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바른길로 이끌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내가 가장 많이 의지했던 막내 이모는 결혼으로 먼 곳으로 이사를 하였고 멀어진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서 나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둘째 이모에겐 죄송한 마음에 힘든 얘기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이모도 힘든데 나의 이야기로 이모의 마음에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 나는 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혼자만의 작은 생각들은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외로웠다. 바쁜 회사 일로 늦은 퇴근을 하는 남편에게,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는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육아를 집에서 노는 것으로 생각했다. 집에서 놀면서 투정 부린다고 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서도 위로를 받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 쌍둥이를 키우면서 나는 정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돌아서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매일 반성하는 엄마였다. 잘해주다가 화내고 돌아서면 미안해하는 매일 반성하는 엄마.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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