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의 미학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려면?
작품 제출 마감일이 다가옴에 따라 분주해졌다.
이번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어떻게 하면 다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겹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작가들이 비주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선택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무언가를 더 얹는 방식으로는
이 안에서 나만의 자리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질문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향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감각은 무엇일까.
요즘 나는 무엇에 자주 반응하고 있을까.
가만히 돌아보니,
시선보다 귀에 가까워져 있었다.
공간을 채우는 노래들.
존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소리들.
나는 그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다.
전시를 설명하는 음악이 아니라,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에서 출발해
내 해석을 거쳐
다시 공간으로 돌아가는 음악.
조사를 하다 보니
단순한 전시 OST는 이미 익숙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감성, 이야기, 컨셉에서 출발해
그것을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아직 많이 시도되지 않았다.
AI를 도구로 삼아 작사와 작곡을 하되,
결정은 끝까지 사람의 감각으로 남기는 방식.
그 사이 어딘가에
이번 작업의 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단어가 있다.
조화.
작가의 색이 지나치게 강해도 안 되고,
내 해석이 앞서 나가도 안 되고,
무엇보다 공간을 해치면 안 됐다.
이 음악이 울리는 곳은 라운지였다.
사람들이 머무르고,
대화를 나누고,
여러 행사가 겹쳐지는 장소.
음악은 배경이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귀를 기울이면 문장이 들리는 정도의 거리감.
사람들의 말을 밀어내지 않으면서
공기의 결을 조금 바꿔주는 역할.
그래서 감정을 세게 흔드는 음악보다는
편안하게 머무르게 하는 음악을 떠올리게 됐다.
울컥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조용히 감정선을 건드리는 쪽.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의 미감이 떠올랐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상태.
이런 멋을
어떻게 하면 지금의 공간 안에서 채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하나의 작품으로는 부족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신 사운드라면,
형태를 갖지 않으면서도
공간 전체를 고르게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백이 있지만 비어 있지 않고,
조용하지만 단절되지 않은 상태.
작가들의 감성과 공간이 가진 고유한 공기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매개.
나는 그 연결감을
음악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적정선을 아는 감각이야말로
지금 이 공간에 가장 필요한 미감처럼 느껴졌다.
기존의 공간 음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외국의 문법에서 출발해 있었다.
세련되지만,
한국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멀었다.
그래서 언어를 들여다봤다.
영어와 한국어의 리듬 차이.
발음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여백의 차이.
그 미묘한 차이가
음악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그 차이를 음악에 옮겼을 때도
세련됨은 유지될 수 있을지,
국악의 요소를 빌렸을 때
과거로 물러서지 않을 수 있을지.
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찾고, 묻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GPT와 방향을 상의하고,
정보를 모으고,
내가 결정하고,
다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일.
지금은 테스트 단계에 와 있다.
아직 완성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이 감각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이번 프로젝트가
하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적인 공간에서,
한국적인 가락이
조용히, 자연스럽게 흐르는 장면을
조금 더 자주 만나게 되기를.
아주 크게 들리지 않아도,
기억 속에는 오래 남는 음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