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와이룰즈 Nov 05. 2023

내 삶을 꽉꽉 채우는 방법

Late to the apron 02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니 그러려니 했지만 뭔가 억울했다. 뭔가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시계가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주방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


각자의 삶의 시간은 모두 다르다. 단순히 얼마나 더 오래 사느냐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세상은 물리적 시간을 기준으로 살아가지만 우리 뇌는 경험의 시간을 살아간다. 매일같이 10km를 뛰는 사람과 가끔 3km만 뛰던 사람이 10km 코스를 함께 뛰었을 때 느끼는 시간이 다른 이유도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10km 러너에겐 매일 반복하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3km 러너에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이다. 이렇게 나에게만 적용되는 시간의 흐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즉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각자의 시간 흐름을 결정한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는 삶이 안정되면서 유혹이 줄어들고 새로운 경험도 멈추면서 경험의 영역 확장도 멈추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익숙한 경험은 차곡차곡 쌓이며 안으로 더욱 단단해진다. 그럴수록 새로움을 더욱 멀리하게 되고 익숙한 것만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슬프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다. 그런데 빠르게만 가던 나의 시계도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면서 확실히 느려졌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시간의 밀도가 커졌다고 해야 할 듯싶다. 3개월 간의 경험치는 마치 1년 치와 맞먹는 것 같았으니까.


많은 이들이 별일 없이 잔잔한 삶이 가져다주는 평화로움을 꿈꾸지만 어떻게 보면 삶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 무모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꽉꽉 채워 밀도 있게 살아가는 중이라고 보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서른일곱에 주방에 들어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