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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Oct 20. 2023

<에피소드 5>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보물과 창의력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_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 강창래)



>> 5시 40분, 원하는 시간에 정확히 울려준 나의 알람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준 나의 몸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몸을 수영장까지 데려다준 평범한 나의 차와  그 차의 창으로 잠깐 느낀 신선한 아침 공기는 나의 보물입니다.


뛰어들 때마다 저절로 “아, 좋다” 말하게 만드는 수영장의 찬물과 물을 헤칠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물살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마주한 따뜻한 두부 한 모는 나의 보물입니다.


(중략, 출근길 보물)


사무실에서 내가 직접 내려 마시는 녹차 한잔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녹차와 함께 업무 모드로 바뀌는 나의 머리와 오늘 처리해야 할 열한 가지 일들은 모두 나의 보물입니다.


늘 그 자리에서 별문제 없이 내 명령을 기다리는 내 노트북과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보물 1448호 백자 사진의 단아함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이 원고를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순간은 나의 보물입니다.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나의 일상은 나의 보물입니다.  >>  _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 강창래)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라는 글로 시작합니다. 이 글을 본 순간 '이 책은 이 한 문장이 다 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 박웅현은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작가 강창래가 광고인 박웅현을 인터뷰하며 쓴 내용입니다. 광고계에 최고로 꼽히는 박웅현이 만든 광고 이야기를 중심으로 박웅현이 광고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인간 박웅현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박웅현과 그가 만든 광고에 관한 책이지만, 광고보다는 '어떻게 하면 박웅현처럼 일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더 끌렸습니다.


박웅현은 광고 만들기가 직업이므로, 그의 이야기에 창의력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박웅현이 일상생활을 남다르게 보는 비결도 창의력의 힘입니다. 창의력에 대해 강창래 작가가 묻고 광고인 박웅현이 답합니다.


>> 그래서 박웅현을 만났을 때 무식하게 물어보았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뭘 해야 하나요?” 뜻밖에 박웅현은 가볍게 받았다.


“누구나 그것을 물어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한 사람에게 오늘 뭐 하기로 했는지 되묻습니다. 영화 보기로 했다고 하면, 영화를 잘 보면 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집에 가서 미드 본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드 잘 보라고 합니다. 홍대 앞 클럽데이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서 잘 놀라고 합니다. 이게 제 답입니다. 사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건 없습니다. 뭘 하든 안테나를 세우고 ‘잘’하면 됩니다."


“저는 박 ECD와 이야기를 잘하면 되겠군요(함께 웃음). 그런데, 안테나를 세운다는 말씀은?”


“안테나는 알랭 드 보통 책에서 본 비유인데, 너무 적절해서 자주 써먹습니다.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이디어는 전파, 창의력은 안테나에 비유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이디어가 마치 전파들처럼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안테나를 세우는 순간 전파가 잡힙니다. 라디오를 켜면 전파를 잡아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해 준다는 것이지요. 물론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어야 더 많이 그리고 잘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더라도 ‘잘 읽어야’ 합니다. 잘 읽지 않으면 책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당신도 지금 당장 시작해 보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그려보라. 만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면 다시 관찰하고 되풀이해서 그려보라. 되풀이하는 동안 ‘그림과 함께 당신도’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웅현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  _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 강창래)


이 구절에서 대략 답을 찾은 듯합니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해서 안테나를 세운다.', '안테나를 세운다는 것은 그 순간에 하고 있는 것을 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이 책을 읽은 날 저녁, 아내가 차려준 식탁에서 '오늘 아침은 보물입니다' 이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저녁이라서 '보물' 대신 '감사'로 바꾸면 되겠다고 나름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여보, 잘 둘러보면, 살면서 감사한 것이 참 많은 것 같아"


아내는 '이 인간이 또 뭔 헛소리하려나' 하는 듯 밥 먹다가 고개는 들지도 않고 눈길만 힐끗 던집니다. 아내의 찌릿한 눈총에 좀 뜨악해집니다. 그래도 밥상을 내려다보며 용기를 내봅니다. '이건 성공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대한 차분하게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오늘 저녁도 이렇게 당신과 식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네, 당신이 차려 준 밥이 있어서 감사하네, 밥뿐만 아니라 국도 있어서 감사하네, 반찬도 있어서 더 감사하네"......


생각이 끊깁니다. '이런... 한 열 개까지는 해야 될 텐데...' 하는 조바심이 밀려옵니다. '멈추면 망신이다'


"국을 떠먹을 수 있는 숟가락이 있어 감사하네, 반찬을 집을 수 있는 젓가락이 있어서 감사하네(없었음면 어쩔 뻔했어...), 식탁이 있어서 감사하네."......


입은 말머리를 잃었고, 눈동자는 무언가를 찾아서 두리번거립니다. '윽, 이게 아닌데....' 이때 익숙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듭니다.


"우쒸.. 증말~~ 뭐 하는겨, 집어 쳐!"


이 실험 결과를 정리해 봅니다.


< '박웅현식 창의력' 사용 시 참고사항 >

(주의사항) 평소 나의 수준을 아는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어설픈 흉내내기는 감동대신 주먹을 부르기도 함.

(교훈) 오독을 즐기는 것은 자유지만, 사용할 땐 부작용을 있을 수 있음. 글과 말은 많이 다름.


실험을 실패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창의력 말고도 뭔가 더 있었습니다. '표현력'이라고 결론을 내려봅니다. 박웅현은 광고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의 광고인입니다. 거의 평생을 글과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 표현력을 금방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 표현력의 바탕에는 인문학적 독서가 있었다는 것을 책 제목이 알려줍니다.


어쨌든 박웅현 덕분에 '오늘이라는 보물'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물을 얻으려면 먼저 창의력과 표현력을 캐내기 위해 '책을 보물처럼' 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보물을 잡아내는 안테나를 세워보면 어떨까요?"



(맨 앞에 인용하고 중략한 '출근길 보물'을 이어서)


>> 출근길 차 안에서 들은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나의 보물이고 그 목소리의 선율을 만들었던 베르디라는 사람은 나의 보물입니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 장마로 약간 불어난 중랑천의 물길, 삭막한 시멘트 벽면을 부드럽게 덮어가는 담쟁이덩굴의 부지런함, 그 담쟁이덩굴에서 볼 수 있는 총천연색 연두색의 향연, 천변에 아무렇게나 핀 노란 들꽃, 그 들꽃을 살짝살짝 흔드는 바람 그 바람을 헤치는 자전거의 풍경, 그 위를 나는 이름 모를 새의 날갯짓, 물새들이 가끔 보여주는 이륙과 착륙의 경이적인 몸짓, 거기에 간지러운 듯 반응하는 개천 물의 흰 포말…


출근길에 만나는 이 모든 풍경은 나의 보물이고, 천천히 달리며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 교통 정체는 나의 보물입니다.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나의 일상은 나의 보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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