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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Oct 19. 2023

17. (존중) 아내에 잘하자

아버지 학교의 교훈

사랑도 언젠간 끝나기 마련이지만 행복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죠.

                 _내 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묵)



앞 글에서도 잠시 말한, 회사 일보다는 가족을 우선해야겠다는 결심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당시 근무하는 부서에서 상사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상사는 내 소신과 맞지 않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했습니다. 저는 상사의 요구를 거부했고, 본사에서 지사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저는 지방에 있는 본사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로 발령을 받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쌍둥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에 치중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을 만회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아버지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아버지 학교에서 배운 것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두란노 아버지학교'가 지역별로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무턱대고 가장 빠른 일정에 등록했습니다. 등록하고 보니 수원의 어느 교회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운영하는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왕복 4시간을 오가는 거리였지만 피곤한 줄 모르고 다녔습니다. 아버지 학교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토요일 밤늦게 집에 돌아왔지만 피곤하지도 않고, 오히려 충전된 느낌이었다. 두란노 아버지학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배우는 과정입니다. 지금은 그때 배운 내용이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한 가지만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잘하고 싶다면, 먼저 아내에게 잘하라."


이 말은 저의 내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5주간의 아버지 학교를 마무리하는 수료 행사는 '세족식'입니다. 그간 고생한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입니다. 이때 몇몇 아내는 남편의 정성스러운 편지와 고백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정의 주도권은 엄마에게 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빠는 주로 바깥일을 하고 엄마가 집안일과 아이를 챙깁니다. 아이를 돌보는 건 대부분 엄마의 몫입니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야만, 아이를 충분히 챙길 수 있습니다. 남편이 속을 썩이면 엄마로서 역할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아버지 학교 이후로도 아내를 힘들게 한 적은 많았지만, '아내에게 잘하라'라는 말은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어도 실제로는 해 줄 게 없거나,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성심껏 들려준다고 해도 아이는 잔소리로 들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학교나 학원의 교육 시스템에 얽매여 있는 것만으로도 큰 고통입니다. 부모마저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아무리 좋은 말도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잔소리를 들으면 아이는 반발심이 생깁니다. 부모와 자식 간은 더 서먹해지고 멀어집니다.


저는 언변이 어눌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로 하는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직장과 집에서 말을 최대한 자제합니다.


말을 잘하지 못해서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쌍둥이에게는 잔소리를 덜 하는 아버지로 남게 했습니다.


아내에게 잘한다는 건 아내가 가정에서 주도권을 갖도록 배려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에서부터 가끔 나서는 나들이 계획까지 아내가 결정하도록 합니다.


쌍둥이가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이후부터는 명절에 친지 방문과 같은 대소사 참여도 최대한 쌍둥이의 일정에 맞춰야만 했습니다.


아이의 일정을 조율하고 맞추는 것은 엄마가 가장 잘합니다. 이럴 때 아내에게 전권을 주고 맡긴다면 의견 충돌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인생의 최종 목표는 '쾌락'도 '비일상'도 아닌 '일상'에 있다.  _오후의 집중력(나구모 요시노리)


ㅣ 최고의 선물


'아내에게 잘하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싸우거나 갈등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유년기의 아이는 감수성이 예민합니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거나 불안하면 집중해서 공부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공부는 절대적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난 후의 문제입니다.


아내에게 웬만한 일이라면 믿고 맡기는 것이 아내에게 잘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쌍둥이에게 가끔 말합니다.


"아빠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엄마예요. 받고 안 받고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예요."


아빠가 엄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만큼, 아이도 엄마를 존중합니다.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에게도, 아내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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