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행동은 어떤 것이든 인간들의 삶에 찾아올 때 필시 해를 끼치리라. _안티고네(소포클레스)
"아빠는 49 대 51이에요."
네 살 아들의 대답 재촉에 저는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항상 '50 대 50'이라고 말하다가 어느 날엔 딸아이를 '1'만큼 더 사랑한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이 말에 아들은 설움이 복받쳐서 “거 봐요~”하며 울먹였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아빠가 자신에게 섭섭하게 해 왔던 것을 차곡차곡 쌓아오다가 울분을 터트린 것입니다.
ㅣ 아이는 편애에 민감하다 ㅣ
쌍둥이 양육을 위해 때론 엄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쌍둥이를 똑같이 대했더라도,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은 자신을 더 가혹하게 대했다는 확신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은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는 듯 설움을 폭발시켰습니다. 저는 '49대 51'은 '1'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편애와 공평함에 예민한 아이는 이것을 전부로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1'을 더 준 건 사실, 딸이 엄마와 성향이 잘 맞지 않아서 자주 혼나곤 했기 때문입니다. 혼나는 이유 중 하나는 딸이 저를 닮아서였습니다. 특히 제가 아내에게 마음에 들지 않게 한다든지, 아내가 내게 화가 났을 때, 저를 대신해서 딸을 더 혼내는 듯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딸에게 미안했습니다.
딸은 뭐든 열심히 했고 뛰어났지만, 아내에게는 딸아이의 게으르고 특이한 모습이 더 많이 보였던 듯했습니다. 그래서 낙담해 있는 딸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아주 중요하고 큰 카드를 써버렸습니다. 딸은 저를 닮았다고 해서인지 똑같은 열 개의 손가락 중에 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입니다.
ㅣ 규칙은 스스로 정하게 한다 ㅣ
표현은 누군가를 더 사랑한다고 했지만, 쌍둥이가 편애나 차별받지 않는다고 느끼도록 노력했습니다. 가급적 쌍둥이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도록 했습니다.
'월수금 화목토'
쌍둥이가 네 살 무렵에 스스로 정한 놀이의 순서 규칙입니다. '월수금'은 아들이 원하는 놀이를 하고, '화목토'는 딸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하는 요일이다.
쌍둥이는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상대가 안 해 준다고 불만이었습니다. 규칙을 정해줬습니다. 규칙은 '일주일에 하루씩 번갈아서 원하는 놀이 해주기'입니다. 쌍둥이는 스스로 정하고 합의했기 때문에 잘 지켰습니다. 가끔 자기가 정한 놀이를 할 차례인데 안 해 준다고 호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너희가 정한 거니, 너희가 알아서 지켜야 해요"라고 강조합니다. '서로 합의해서 정한 대로 안 놀아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린 나이지만 스스로 정하고 그 책임과 지킬 의무까지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언니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_비행운(김애란)
ㅣ 호칭에서도 편애가 드러난다 ㅣ
아이들은 순백의 백지입니다. 백지에 어떤 것을 그리느냐에 따라 완성되어 갑니다. 차별은 가장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걸 알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가끔 다른 가정의 호칭이 거슬릴 때가 있습니다. 아들딸을 둔 가정에서 부모가 아들에게 이름 대신 "아들~"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입니다. '아들'이라는 호칭이 왠지 아들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처럼 들립니다. '딸은 엄마가 아들을 특별하게 부를 때 어떤 마음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기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49 대 51'이라고 말하고 나서 그 이후에는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공평하게 대해야만 공평함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쌍둥이는 공평한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다섯 살 무렵에는 아파트 현관 출입문 도어록을 해제할 때 비밀번호를 누가 누를지도 경쟁했습니다. 어느 순간, 쌍둥이는 한 자리씩 번호를 번갈아 가며 누를 정도로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공평함의 가치를 알고 규칙을 정해서 지키고,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 갈등은 줄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