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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23. 2021

과거에서 보내온 행운

오늘의 단어: 행운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내게 주어진 행운이야 무수히 많다(그만큼 불운도 많지만). 오랫동안 대규모 전쟁이 없는 '긴 평화'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다른 행운들도 이어 떠오르지만 "이러이러해서 난 운이 좋아"라고 말하면 '이러이러한' 조건을 갖지 못한 인생은 불운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아서 쓰기가 꺼려진다. '긴 평화'라는 것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강대국과 한국의 관점에서 평화일 뿐,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대신 최근 거머쥔 작은 행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며칠 전 근무 시간에 대표님으로부터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모 재능 거래 사이트의 PDF 콘텐츠 제공 방식에 대해 리서치를 하라는 것. 마침 프리랜서 시절 통・번역 재능 판매자로 등록해 잠시 활동했던 사이트였다. PDF 콘텐츠의 유통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잠들어 있던 내 계정을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수익금 2만 4천 원이 남아있는 게 아닌가! 깜빡 잊고 미처 출금하지 못한 번역비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초밥을 배달해 먹을 예정이었던 나는 아, 오늘 초밥은 공짜로 먹겠네, 하는 생각에 잔뜩 들떴다. 


 어차피 내가 일해서 번 돈인데 그게 어째서 공짜고 행운이냐고?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대표님이 그런 업무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활동을 그만뒀던) 그 사이트에 다시 로그인할 일이 없었을 것이고, 내 2만 4천 원도 영원히 잠들거나 공중분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행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 공짜는 아니지만, 과거의 내가 사준 초밥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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