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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Jun 10. 2019

공공예술로서의 도서관을 찬미하다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심미안을 키우고 향유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지

도서관이 우주의 모델이라면,
우리는 도서관이 인간에 맞는 우주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재미로 가득 찬 우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움베르트 에코 -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은 홈페이지에 세계적인 학자인 움베르트 에코의 말을 게재하여 도서관의 방향을 제시한다.  

움베르트 에코가 참석한 개관식의 주인공인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과연 어떤 도서관일까?


도서관의 낮과 밤 (右  @ locationscout.net)


재독 한국인인 이은영 교수가 설계한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은 2011년 10월 21일에 개관했다. 공업도시였던 슈투트가르트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꾼 이 유명 건축물에 대한 평가는 찬사를 넘어 찬미에 가깝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수진 발레리나가 소속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도시 슈투트가르트 市에 이전에는 여행객들이 벤츠 박물관·포르셰 박물관을 먼저 찾았다면 지금은 시립도서관을 향하는 행보가 더 먼저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건축은 개인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며 동시대뿐 아니라 수백 년, 수천 년에 이어질 인간사에 대한 책임이라고 누누이 설파한 한 건축가의 힘이랄까?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포함하여 이 곳에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몸과 마음까지 묶어 둔 거대한 지역 예술품인 도서관의 매력은 직접 경험할 때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2013년 CNN Travel은 대학도서관 3곳, 시립도서관 4곳을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곳을 선정했다. 도서관이 지식과 정보의 창고일 뿐 아니라 시민의 삶과 밀접한 공공 공간이라는 공감대에 초점을 둔 선택이다.  이는 변화하는 시류를 반영한 변모되어 가는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를 보여준 결과이다.


1997년 슈투트가르트 市에서는 미래 도시개발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도서관 측에서는 도시개발과 함께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대비하는 새롭고 현대적인 도서관 설립을 위한 '슈투트가르트 21'이라는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공업도시이면서 유럽의 경제중심 도시인 슈투트가르트는 이민자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제도시이다.  슈투트가르트 市에서는 다양한 유럽의 인력을 모으고 경제활동의 구심지가 되어 줄 중앙역사를 새로 짓는 동시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할 건물로 도서관을 구상하게 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항상 광장 중심으로 시청과 교회와 주요 건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 중심의 문화가 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도서관이 새로운 정신적 문화적 중심이 되게 만들려는 계획은 교회와 시청이 도시의 랜드마크이던 과거로부터의 흐름을 박차는 혁명과도 같은 사업이었다. 도서관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중앙역사를 지하에 짓기로 한 것은 당시로서 아주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환경평가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과열된 찬반토론으로 이어졌다. 슈투트가르트는 전통적으로 친환경 분야에 앞서가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자연광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역시라는 감탄의 말들을 늘어놓게 된다. 이뿐 아니라 지열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지었기에 친환경적으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지금은 지하에 입점된 각종 쇼핑몰과 함께 어우러진 중앙역사에서 올라오면 밀라노 광장을 마주하게 되고, 이어 마주치게 되는 큐브 모양의 거대한 도서관과 맞닥뜨리게 된다. 편리한 접근성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게 된 셈이다.


이민자와 유학생을 위하여 25개국의 다양한 언어의 책과 18개국의 신문,  6만권의 책, 4만여개의 미디어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998년에 유럽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가 이은영은 주최 측에서 요구한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건축물 속에 완벽하게 구현해 내었고 도서관 완공 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서관은

과거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궁전이 감당했던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 아니라 도시생활의 정신적·문화적 중심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정신을 위한 초석의 위치를 갖게 되어야 합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지식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애초 도서관측에서 원했던 것은  

자아성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춘 혁신적 멀티미디어 도서관이었다. 


판테온에 영감을 받았다는 1층부터 4층에 이르는 텅 빈 공간. 이 곳이 자아성찰의 기능을 하는 곳일 듯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마법 같은 도서관은 무려 12년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현대 역사에 등장한다. 12년 동안 비판과 눈치 속에서 오롯이 감내한 수고는 그간 달려온 힘겨움을 보상하는 극찬을 받는 열매로 마무리되었다.    

자연채광으로 인해 빛의 양에 따라 도서관 색이 달라진다


공사기간 중 겉모양만 보고 책의 감옥이라고 질타했던 언론들은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그리스 신전 판테온에서 사람들이 신들에게 경배하듯 도서관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 중의 하나 (CNN, 2013)
다양한 색채의 책과 함께 어울려 백색의 내부 공간이 주는 강한 인상이 가히 환상적이다.
- 디자인 전문 매거진 미니멀리시모 (2012.4.23) -
나선형 계단의 중앙 열람실 공간은 지난 수 십 년 내에 창작된 구심적 공간 중 가장 흥분케 하는 공간이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2012.4.14.)-
지식 탐구 및 교류의 장소라는 도서관의 두 가지 속성을 건축적 이미지로 함께 드러내었다.
-노이어 취리허 차이퉁 (2012.4.4.)-
한국 언론에서는 건물 벽면에 도서관이 한글로 쓰여있다는 것과 건축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며 연신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었다.  

 

네 딸내미들과 슈투트가르트에 아주 멋진 도서관이 있다고 소개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달려갔었다. 간략하게나마 도서관에 대한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도서관의 매력을 발견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7시간 차로 달렸다.

아뿔싸!

어렵사리 갔건만, 미리 홈페이지에서 휴관일도 확인했는데 제대로 확인을 못한 것인지 아니면 급작스럽게 임시휴관을 한 것인지 사방팔방 도서관 문은 닫혀 있었다.

이후 일정이 있어서 잠시 고민을 하였는데 오히려 아이들은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다며 내일 다시 오자고 한다. 그래서 과감히 다음 날 일정을 포기하고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숙소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두 시간 동안 차로 달려오게 만든 매력 넘치는 도서관이다. 전날 아이들은 도서관 주변 바닥분수에서 놀고 도서관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발견한 한글로 쓰인 도서관이라는 글자 때문에 다시 오자고 그런 것이다.  아이들의 기특한 모습에 무척 감동받았다. 다른 도서관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 도서관이다.  


보기엔 한산해보여도 주변에 각종 레스토랑과 상가가 있는 번화가이다. 지하에 쇼핑몰과 중앙역사가 있다.


순진한 우리 아이들은 도서관의 새하얀 색상과 너무 잘 어울렸다.

도서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무대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듯한 배경이 걸작인 도서관 안 쪽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영화 같은 장면이다..

1층에 출입구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아이들이 환호하며 신기하다는 듯이 다가간 곳은 텅 빈 공간이다.

경이로운 자연환경을 보고 무아경에 빠진 사람들처럼 모두가 바닥을 응시했다.  

아니 도서관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흡사 깊은 산속 어느 한 구석에서 연기 나는 호수를 만난 기분.

아이들도, 주변에 있던 어른들도 모두가 숙연하게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오는 바닥을 쳐다보고 그러다가 높디높은 천정 한 번 쳐다보고.


사방에 나 있는 문을 통하여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미로 찾기 놀이가 어울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문을 통하여 위층에 올라가야 하는지 몰라 왔다 갔다 하며 즐기고 있었고 제각각 다른 문으로 올라가서 어린이책이 있는 3층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놀거리가 풍성하다. 볼거리를 일단 제쳐두고라도.

네덜란드도 그렇지만 대체로 유럽에 가보았던 도서관들은 아동 중심적인 공간이 많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늘 아이들이 보는 어린이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놀거리가 많다. 잘 놀고 즐기고 잘 읽도록 배려한 소품과 가구들과 공간을 몸으로 부대끼며 익히게 만드는 곳이 도서관이다. 구석진 곳에서 놀기 좋아하고 뒹굴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동선까지 고려한 공간 짜임새가 무척이나 맘에 드는 요소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한국 책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핀다. 그래서 한국 책이 있으면 좋은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자기네들이 읽었던 책 '몽실언니'가 버젓이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너무나 좋아한다. 다시 오길 잘했다고 서로 다독이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서관 건물 한 벽면 위에 도서관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며 흥분했던 것도 이야기한다.

왜 한글로 도서관이 쓰여있을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글자는 어느 나라말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영어, 독일어는 금방 알아맞혔다. 아랍어까지 맞추기는 좀 무리였겠지만.

아이들의 추리력은 놀랍다. 왜 한글로 도서관이 적혀있는지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으니 더 놀랍다.


한글이 우수하니까 독일 사람들이 한글 배우라고...

혹시 도서관 만든 사람이 한국 사람 아닐까?.....



그래서 건축가가 한국인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어떻게 독일 도서관을 한국인이 설계하게 되었냐고 되묻는다. 차근차근 도서관 설립 과정을 말해주었더니 아이들이 이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놀고 싶다고 한다. 가끔 우리 아이들이 네덜란드 시골아이들이라 도시에 나오면 도시 구경하듯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유럽의 고풍이 잘 나타난 건축물들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 참신한 도서관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유원지였나보다.

한옥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창문


한참 동안 어린이책을 보고 읽고 놀다가 도서관 구경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시내 전망을 바라보자고 했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다가 갑자기 뻥 뚫린 공간을 보며 아이들은 정말 흥분하였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듯한 깔끔하고 세련되며 정제되어 보이는 구조에서 어떻게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지 말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에셔미술관에서 보았던  무수한 작품을 보며 기괴한 아름다움을 느낀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이다.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어디가 평면이고 어디가 입체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뫼비우스적인 광경이다.

 

左 갤러리 홀의 신비로운 모습 @도서관 홈페이지,   右 모리스 에셔의 作 계단 @ google.com


도서관이 이렇게 이뻐도 되는 것인가 싶었다.

유명한 도서관 한 번 구경하고 온 김에 읽을 만한 책 있으면 봐야지 하며 똘레 똘레 찾아왔던 그 유치한 생각이 절대 옳았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도서관의 아름다움에 취해있음은 두 번이나 발걸음 한 피곤함을 잊게 만들고, 왠지 모를 기운이 나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비논리적인 감정이 순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지적 유희를 얻고자 오는 도서관에서 미적 감성이 충만해져서 오는 것도 말이 안 맞는데 말이 된다는 신기루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애써 이 도서관의 특징과 장점을 살피고자 했다.

저기가 도서관측에서 요구한 자아성찰의 기능을 돕는 공간이군.

여기가 멀티미디어 자료실이구나. 21세기를 준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구나.

이렇게 혼잣말을 해가며 도서관을 누비고 다녔다.

동서양의 특징을 잘 살렸다더니 진짜 그렇구나.

한옥의 멋이 얼핏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하고, 자연채광을 중시하는 서양 건축물을 보며 그들이 빛을 건물 속에 품는 남다른 감각에 감탄하기도 했다.

여느 도서관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애쓰는 풍경을 보며 만족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지상 9층, 지하 3층의 건물, 지하에는 300여명을 수용하는 대형 강당이 있다.


5층부터 9층까지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구조, 갤러리 홀
24시간 반납 가능한 반납도서를 분류하는 파란색 카트가 컨베이어 벨트따라 움직인다.  혁신적 멀티미디어 도서관이라는 장치





심장(Das Herz)이라고 지칭하는 공간에서 한참 동안 즐기고 놀았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바라보는 공유된 공간에서 오히려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들어 이 곳이 나를 위한 개인 공간이라고 착각하는 자유를 누린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이런 공간 이외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탐닉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이 많다. 그곳에서 음악을 감상하든 영화를 보든 신문을 보든 자유롭게 당당하게 자신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숨바꼭질을 하는 숨는 공간을 좋아한다. 그곳에 틀어박혀서 뭔가를 상상하고 시간을 소일하며 집중하는 쾌락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저만치 떨어져서 자신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지친 심신에게 쉼을 주기 위해, 몰두하기 위해, 아님 그냥 멀치감치 있고 싶어서.



도서관에 의외로 그러한 공간들이 많다. 특히나 현대 도서관에는.

집단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방편으로 작은 공간을 소원하는 이들이 많다. 소규모로 모이기도 하고 때론 혼자서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 집중하려고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기본적으로 도서관은 다른 이들이 책을 보거나 공부할 때 방해를 주거나 받지 않도록 개인 공간을 잘 마련해 놓는다. 그러나 나는 꼭 그러한 목적으로만 개인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느다.  


도서관에 마련된, 임의의 누군가를 위한 개인적 공간은 도서관에 찾아오는 이들의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절대 배려 장치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때마침 독일 도서관에 왔으니 독일어 하나를 소개한다.


슈필라움(Spielraum); 놀이(Spiel) + 공간(Raum)

 =>  활동의 여지, 여유 공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그의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슈필라움' 단어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브루노 베델하임의 주장을 언급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적 행태를 보였다. 그들에겐 슈필라움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수용소의 삶이 수감자들을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적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때 슈필라움은 '심리적 여유 공간'을 뜻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물리적 공간이 박탈된 유대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벌거벗은 어린아이처럼 되거나 아니면 죽거나의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부재는 곧 심리적 공간의 부재로 이어진다. 일체의 프라이버시가 허용되지 않은 수용소에서 슈필라움 사치였고 슈필라움을 상실한 이들에게 삶은 곧 의미 없음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바닷가 마을에 미역 창고라는 작업실을 마련한 후 '슈필라움'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며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의 앙상블이라고 말한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정의한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어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이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긴다는 것이다. 나아가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에는 그러한 마술 같은 공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슈필라움의 공간이 여러 형태로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책이 있는 3층에 작은 놀이터로 디자인된 구역이 있고 중간중간 아이들이 숨어서 마음대로 뭔가 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있다. 비단 어린이책 층만이 아니다. 성인들을 위한 곳에도 더러더러 많다. 유리벽으로 감싸져 있기도 하고 아예 구석진 곳을 별도로 1인 공간으로 마련한 곳도 있다.

이 도서관의 심장에서 뭉클한 무엇인가를 품고 도서관 내에 마련된 슈필라움에서 지친 심신을 충전하고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들이 있는 것이다. 거기서 상상을 하든 묵상을 하든 독서를 하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바로 이러한 공공의 장소에서 슈필라움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중독에서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막힘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거리낌 없이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음이 예술이다.

옥상 전망대, 여기서 바라보는 슈투트가르트 시내 전망이 참 좋다


이미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아름다움이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모토를 가진 바우하우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라 이 도서관의 외양은 아주 간결하고 실용적이다. 모두에게 열린 공공건물이라 누구나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  


Les Bar라는 카페 (9층)
그림을 대여해주는 아트센터; culture complex (9층)


H. G. 웰스(Herbett George Wells)의 <벽 속의 문 The Door in the Wall>이라는 소설을 보자.   


한 아이가 신기한 문을 발견하고는 그 문을 열고 마법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행복해졌다.  다음 날 아이는 그 문을 찾아보지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문이 다시 나타났지만 다른 일로 몹시 바쁜 아이는 문을 열 시간이 없었다. 아이는 자랐고 아주 가끔 그 마법의 정원을 떠올렸다. 애써 찾으려 하지 않을 때 그 문은 나타났고, 그런 때는 뒤로 미룰 수 없는 아주 급한 일들을 해야 했다. 아름다움에 투자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아이는 그 멋진 정원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우리 역시 너무 마음이 부산하고 분주하고 바쁘다. 우리는 자주 아름다움을 잊고 산다. 비극적인 망각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감정적 교신이 부족해지고 세상은 그저 그렇게 보이며 다른 것들에 흥미가 사라지고 삶은 자신의 화려한 빛깔을 잃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게 된다.



피에로 파루치는 자신의 책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에서 아름다움이 우리의 죽어 있는 일상을 구원해 주는 것이 심미안이라고 말한다.


소소한 물건에서, 무료한 일상에서, 평범한 세상에서 지친 삶을 다독이고 구원해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가로수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바람 때문에 떨어진 나뭇잎이 눈처럼 쌓여 있었어요.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단 한 번도 그 길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었는데 신비로운 경험이었어요.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서 나는 심장의 떨림을 느끼게 돼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죠.

아름다움이란 우리 존재의 모든 모습과 모든 기능을 확인시키고, 우리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며, 주변 사람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우주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피에로 파루치) 中에서 -




감격적인 도서관 개관식에서 부스만 도서관 관장은 갤러리 홀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감을 말한다.


나에게는 아주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이 공간은 비어 있는 자체만으로도 훌륭해요. 그러나 책으로 채워짐으로써 마침내 그 본분을 찾았습니다.


부스만 도서관 관장은 개회사에서 도서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이 큐브 건물은 서적 문화를 위한 장엄한 생명이며 디지털화 시대와 가상화 시대에 인쇄된 서적에 대한 신봉이나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도서관만으로 해석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약 11,500 평방미터 규모의 이 새로운 건물은 대화와 문화의 장소이며 개인생활은 물론 직업생활·사회생활을 지원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아주 철저한 민주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도서관은 진심 재미로 가득한 우주가 될 것이 뻔하다.

다행이다. 아이들과 우주여행 다녀온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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