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an Son Mar 10. 2024

두려움의 역설: 내 명의로 사업을 하겠다 하시는 어머니

전제: 사람에 대해 보다 더 알기 위해서는


- 화가 난 상황을 마주한다

- 함께 여행해 본다

- 돈과 관련된 상황을 경험해 본다

- 함께 살아본다


상황: 어느 날 어머니가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운영하고 싶다 하셨다.


갑작스러웠다.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이, 삼십 대 창업자들도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들었던 치킨 사업을, 70이 넘으신 연세임에도 해보겠다고 하셨다. 더 놀라운 점은 해당 사업 진행을 내 사업자 등록증으로, 해당 사업의 초기 자금을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기업 계좌와 연결된 대출 상품을 통해 마련해줬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또한 디지털 디바이스 작동에 익숙지 않은 어머니를 대신해 배달 앱 관련 온라인 사업 전반의 대리 구축 및 안정화 작업, 나아가 치킨 튀기는 장비 사용에 있어서의 힘쓰는 역할마저도 초기 비용 부담의 최소화라는 명목으로 아들인 내게 도와달라 하셨다. 나름 큰 결심을 하신 듯 꽤 거침없이, 실은 무리한 요청을 하시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현상: 초등학생이 사장인 모기업 타 사업장에 불려 간 과장님의 기분이 이런 걸까?


우선 나는 본업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의 나를 향한 가족으로서의 초기의 도움 요청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머니에게나 나에게는 낯선 분야의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무리한 요청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확인되는 사업과 관련된 너무 많은 기준들이 몇 번의 사업체를 운영해 온 나의 관점과 너무 많이 달라 나는 더욱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업은 언제나 사장 개인의 사적인 프로젝트다.

어떤 목적과 아이템, 형태로 진행되건 사업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창업자의 사적인 영역에서의 의미와 목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 사적인 사업의 의도와 목표에 대해 기대 매출액만을 언급하셨다. 왜 당신께서 사장으로서 이 아이템이 좋은 선택인지, 어떻게 지역 내 후발주자로서 기존의 플레이어들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안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사업은 마라톤이다.

어머니는 초반 3개월 뒤에 월 4천만 원 매출이 가능하다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이야기를 강조하셨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 뒤에 목표액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삼십 대 남매나 부부가 매일 오전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영을 해도 체력적으로 1년 유지가 매우 힘든 사업을,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가 투자 이후 몇 주 만에 감당할 수 없다 판단하신다면? 의류, 안경 등의 아이템으로 특정 상가를 방문하는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매출을 만들 수 있었던 어머니의 이전 오프라인 매장 운영 경험이 온라인에서만 홍보, 판매, 결제, 고객 관리까지 해결해야 하는 이 낯선 형태의 사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장의 유일한 역할은 마주하고 책임지는 데 있다.

직원은 업무 진행 중 막히거나 실수를 했을 때 사장을 찾거나 최악의 경우 도망가버릴 수 있다. 반면 사장은 내가 투자하고 직접 운영하는 사업체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때문에 사장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업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압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생각지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해도 묵묵히 이를 직접 마주하고 해결하는 최전선에 서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업자 등록도, 사업 자금도 본인의 명의로 진행하지 않는 기획을 해 오셨다. 차라리 내가 초기 사업 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지켜보는 게 낫지, 공식적으로 새 사업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본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일임하며 시작하겠다는 결정은 사실상 사장으로서의 성과만을 기대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고위급 직원의 역할에 머물겠다는 선포와도 같았다.


제언: 예비 창업자로서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신 듯


어머니는 이번 결정을 내게 공유하기 전, 약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역 내 다양한 중, 소 규모의 사업체들을 직접 찾아다니시며 공간, 인테리어를 확인하시고 각 업체의 사장님들에게 상권, 브랜드 경쟁력, 사업 자금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구하셨다. 종종 혼자 버스로 이동해 찾아가는 길이 힘들다 하셔서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차로 모셔다 드리며 이야기를 들어드렸던 기억은 언젠가는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임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언젠간 나도 사업을 해볼까라는 막연함에서 스스로 멀어지며 조금씩 구체적인 방향을 만들어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내게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안겨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선택은 전반적인 회피에 가까웠다.


물론 나는 어머니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사랑한다. 나아가 어머니의 두려움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안드로이드 폰에 배달의 민족 앱을 까는 것도 어려워하시는 어머니에게 이전의 사업 대비 저렴한 비용으로 조리 공간만 임대하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높은 매출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다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선전은 분명 달콤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대와 두려움 사이의 줄다리기는 이 세상 모든 사장님들이 마주하는 매일의 일상적 현실이다. 내 기준에서의 어머니는 사전 조사 과정에서 이미 강렬한 실행력을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증명하셨다. 그러나 예비 사업자로서의 기대와 책임감, 막연한 전문성에 대한 두려움이 어머니의 사고와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었다.




차마 전하지 못한 생각


난 이번 일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평생의 태도를 확인했다. 어머니의 기획은 그동안 많은 것들을 묵묵하게 해결해 오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라도 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에 어머니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지만 명확한 실천의 과정이어야 한다. 어머니가 만났던 각 브랜드 매장의 사장님들을 찾아가 무료로 일주일 만이라도 일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라도 꺼내보셨다면 어떠셨을까? 나이 한참 어린 다른 직원이나 사장들과의 업무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감수하기 어려우실 만한 부분이 예상된다. 다만 어머니 본인의 목표가 이 정도로 명확하고 의지가 있으시다면 이 작아 보일 수 있는, 스스로 조금이라도 낯선 분야의 예비 창업자로서의 불안을 걷어내는 한 걸음을 직접 만드시는 게 결국 어머니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