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Aug 14. 2018

흑역사도 내 삶의 일부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복원의 딜레마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1541년 10월 31일, 로마의 모든 시민과 성직자들은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가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르네상스 교황이라 불리던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미켈란젤로가 성당의 천장에 기적과 같은 작품 <천지창조> (1508~1512)를 완성한 후 3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율리우스 2세가 사망하고 1533년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7세로 부터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한 벽화를 의뢰받았지만 다음 해 클레멘스 7세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잠시 중지된다. 그러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재개토록 하였고 50평 남짓한 벽면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두 번째 작품이 공식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림은 게으름뱅이에게나 어울리는 예술’ 이라며 자신은 극구 조각가로 불려지기를 원했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아무도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고 벽화를 그렸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사이 만들어진 무성한 소문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몰려왔던 것이다. 



과연 공개된 <최후의 심판>은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중심으로 천국에 오르는 사람들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무리는 미켈란젤로 특유의 인체 표현으로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만큼 역동적이었고 작품이 본래 의도한 두렵고 엄숙한 심판의 메시지를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이를 더욱 충격에 빠져들게 한 요인이 있었으니 예수와 마리아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리얼한 나체로 그려져 있던 것이었다.



<최후의 심판>중 일부,  지옥으로 떨어지는 군상



이 벽화를 향해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이 불거졌고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의 편에 서서 여론을 잠재우려 했으나 긴 시간동안 미켈란젤로의 벽화는 많은 이들의 비난을 불러왔다. 결국 교황청은 1564년 트렌티노공의회의 결정을 통해 그림의 수정을 명한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체의 일부를 살짝 감추는 것, 즉  그림의 19금 부분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수제자 다니엘 볼테라가 중요부위를 천으로 덮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의 원작 위에 다니엘 볼테라에 의해 모자이크 처리가 된 작품인 것이다. 모자이크라고? 그렇다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하고 쳐다보지는 말자. 



480년 동안 시스틴 성당의 벽을 장식하고 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먼지, 그을음, 천장의 누수로 인해 많은 부분 변색이 되고 파손되었다. 성당 측은 본래의 모습을 찾자는 취지로 복원을 결정한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복원작업 예산은 일본 NHK가 보수 후 벽화들의 최초 촬영권을 독점한다는 조건으로 전액 부담하였다고 한다. 



복원을 하는 과정중에도 <최후의 심판>은 원래 색감에 비해 경박하고 가벼워졌다던가, 복원에 사용된 약품이 오히려 원작의 색상을 망치고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비판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골치 아팠던 문제는 1564년 다니엘 볼테라의 가필을 제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만약 다니엘 볼테라가 모자이크 처리했던 부분을 제거하고 원작에 가깝게 복원한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의 원작을 볼 순 없지만 1549년 마르셀로 베누스 티의 <최후의 심판> 모사작을 통해 원작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최후의 심판 모사>  마르셀로 베누스티, 1549, 패널에 유화,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 소장



아래 그림은 다니엘 다 볼테라가 자신의 스승 그림 위에 열심히 가필한 부분과 원작을 가늠할 수 있는 마르셀로 베누스 티의 모사작을 비교해 본 것이다. 





복원(復原)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을 뜻한다. 재료와 방법까지 원래 사물이 지녔던 상태로 되돌리는 수복(修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만약 천년 간 집안 대대로 물려내려 오던 백자 항아리가 있다 치자. 만약 우리 할아버지대에서 이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이 깨어져 버렸다면 얼마나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고 싶을까? 개인이나 단체, 국가 모두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복원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완벽한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과연 어디까지가 복원이고 어느 정도까지 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최후의 심판 복원 과정에서 일어났던 최대의 논쟁이었던  ‘미켈란젤로의 원형인 누드로 복원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중요부위를 가린 천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복원하느냐의 문제에서 성당과 복원팀 측이 선택한 다니엘 볼테라의 가필을 유지한 채 복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 옳았다고 본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이 겪은 숱한 역경과 치욕까지도 그 그림이 가진 하나의 역사이며 위대한 작품이 남겨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지난 시간의 실패들도 개인의 역사를 통해 본다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는 필수 과정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겪는 수치스러운 일들, 불명예 같은 것들 또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내 삶의 일부가 아니던가?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이전 07화 지구를 들어 올리는 두 가지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