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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Feb 19. 2019

나는 오늘 함부로 걷지 않았나...

마네의 오마주 <전원 음악회>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를 재미있게 본 이유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상미와 음악, 스토리 때문 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 속에 녹아있는 1950년대의 뮤지컬들을 반짝이는 색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위플래쉬>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젊은 감독 데미언 셔젤(1985~)은 하버드 대학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재학 시절부터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동갑내기 룸메이트 저스틴 허위츠와 함께 <라라랜드>를 만들었다. 데미언은 각본과 연출을 저스틴은 음악을 담당했다. 30대 초반의 데미언은 그의 3번째 작품인 <라라랜드>로 골든글러브 7관왕, 오스카 6관왕의 영예를 거머쥐며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라라랜드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는 고전 뮤지컬들은 <사랑은 비를 타고 1952>, <스윙타임 1954>,  <쉘부르의 우산 1964>,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1961>,  <부기 나이츠 1997>, <스위트 채리티 1969>

<쉘위댄스 1937>, <밴드웨건 1953>등이다. 셔젤 감독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을 향한 그의 오마주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흑백으로 남아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줌으로 관객의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현재에 발을 딛고 서있는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라라랜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많은 뮤지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라라랜드>또한 이전의 작품들이 그러했듯 다른 작품의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우리가 만나는 미술작품 또한 하나의 명화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후대 작품에 또다른 영향을 끼치곤 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 소개하려는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니의 <전원 음악회>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모나리자가 있는 방 그것도 모나리자가 걸려있는 벽면의 뒤쪽에 걸려있다. 게다가 크기도 작은 편이어서(110 ×138㎝) 관람객의 눈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외롭게 놓여있다. (루브르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모나리자가 걸린 벽의 뒤쪽도 한 번 들러보시길)


<전원 음악회, Pastoral Concert>, 티치아노, 1508-09, Oil on canvas, 110 x 138 cm, Musee du Louvre, Paris


이 그림의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년 추정 ~ 1576년)는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 출신으로 영어권에선 티션(Titian)이라 부르기도 한다.

                   

15세기의 피렌체, 16세기 초 로마에 이어 16세기 중엽 서양 미술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 베네치아였고, 이전의 회화와는 다른 활기차고 혁신적인 구성의 그림을 캔버스에 유화 기법으로 그려내는 베네치아 화풍을 개척하여 '회화의 군주'로 불리는 이가 바로 티치아노다. 그러나 위의 그림은 티치아노의 초기작으로 그의 스승과 같은 동료 조르조네(Giorgione)의 화풍과 매우 흡사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조르조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부터 일부 미술사학자들이 여성의 누드에 티치아노의 화풍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지금은 루브르 측에서도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부에선 조르조네가 그리고 티치아노가 마무리했다는 주장도 있다.)



350여 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 프랑스의 미술계에선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를 표절했다고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당하는 그림이 발표되는데,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다. <전원 음악회>라는 그림을 아는 사람은 없어도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누구나 한두 번쯤은 보았을 작품이다. 미술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네는 <전원 음악회>와 함께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 산지오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의 한 장면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래 오른편의 그림이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1480~1534)가 라파엘로의 원작을 모사해서 만든 동판화다. 라파엘로가 그린 원작 <파리스의 심판>은 안타깝게도 소실되었다. 라이몬디는 당시 표절로 이름을 날렸는데 화가들의 서명까지 그대로 넣어 판화를 만들어 팔아 소송당하기 일수였다. 그러나 후대에 들어 라파엘로의 손실된 원작을 그나마 유추할 수 있게 만든 공로(?)로 동정표를 얻게 되었다. 


왼쪽: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식사>  오른쪽:라이몬디의 모작 판화 <파리스의 심판>


마네는 역사적인 거장 티치아노와 라파엘로의 그림을 자신의 그림에서 오마주 하되 당시 시대상황을 살짝 비틀어 표현했다. 티치아노와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들은 1800년대 프랑스로 배경이 바뀌자 드러내 놓기 불편한 사회의 단면을 표현하는 현실세계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풀밭에 앉아 있는 누드의 여성은 왼편 아래쪽에 드레스와 모자를 벗어놓았다. 숲에 오기전엔 옷을 입고 있었다는 표현이다. 


티치아노의 그림처럼 당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의 누드화는 현재와는 동떨어진 고대를 배경으로 하고 관람자의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져 왔다. 또한 라파엘로의 그림처럼 누드로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들은 그들이 신적 존재임을 알리는 다양한 지물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마네는 기존에 고수되어 왔던 그림 속 규칙을 깨고 새로운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누드가 아니라, 인간세상의 민낯을 그대로 표현하는 파격적인 누드로 변화시킨 것이다.


미술사학자들중 마네의 작품이 거대한 혁신의 시작이었음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모더니즘'의 문을 연 화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견인한 화가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마주 했던 고전주의 그림들은 마네의 위대한 작품과 더불어 그 위대함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작품인 것이다. 

(오마주: 제작자에 대한 존경을 담아 자신의 작품에 드러내 놓고 인용하는 것)


1940~50년대 고전주의 뮤지컬은 라라 랜드를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고, 1500년대 고전주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모든 예술작품은 공시적, 통시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누군가를 오마주 하며 작품을 만들고, 나의 작품은 또 누군가가 오마주 할 것이다. 


비단 예술가뿐이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혹은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에겐 이정표가 되리니” 


나는 오늘 함부로 걷지 않았나 가만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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