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함메르쉐이의 그림들
우리가 보는 달은 늘 같은 면이다. 어느 누구도 달의 뒷 면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올 1월에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달의 뒷면에 착륙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달에 착륙한 다음 날 창어 4호는 탐사로봇 위투 2호를 보내 자신의 발자국, 엄밀히 말하면 바퀴 자국을 달 표면에 남겨 그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위투란 옥토끼라는 뜻이라는데 중국이나 한국이나 달의 표면을 똑 같이 해석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도 본 적 없는 달의 뒷 면, 그 달의 뒷 면만큼이나 미지의 세계는 바로 자신의 뒷모습이 아닐까?
사진이나 동영상속의 뒷모습처럼 무언가를 거친 모습이 아닌 실제 나의 뒷모습은 눈이 뒤통수에 생겨나도록 진화하지 않는 이상 목격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 달의 뒷면은 이제 신비의 베일을 벗었으니 우리의 뒷모습은 달보다 더 한 미지의 세계로 남게 되었다.
예술가들 또한 뒷모습이 가지는 미지의 매력에 관심을 가졌다. 마그리트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보았고, 카스파 프리드리히는 누구라도 보면 그 당당함에 빠져들게 할 뒷모습의 초상화를 남겼다.
뒷모습이 가지는 이미지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그의 성품이나 내면으로 은유되곤 한다. '어릴 적엔 커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 이라던가, '어깨가 축 쳐진 채 걸어가는 친구의 모습' 등은 그들의 내적 상태나 감정을 의미하는 것처럼.
뒷모습을 그린 화가로 인상적인 이는 덴마크 출신의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oi,1864~ 1916)다. 그는 매우 절제된 회색톤을 주로 사용하여 여인의 뒷모습을 많이 그렸다.
단조로운 색상이지만 빛과 그림자를 묘하게 배치함으로 보는 이를 그림 속으로 조용히 끌어들인다. 싸늘한 늦가을 오후 4시, 고즈넉하고 나른한 시간에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는 화가는 무엇을 화폭에 담고 싶었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은 그의 아내 '이다'이다. 그림 속 공간도 그가 실제로 살았던 집이다. 회색조의 색채만으로 명암과 농담을 표현한 기법을 그리자이유(grisaille)기법이라고 한다. 그가 존경했던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가 주로 사용했던 기법이다.
저렇게 단조로운 색조만으로 어떻게 시간과 온도와 공기와 소리까지 그려넣었을까? 그의 그림앞에서면 나는 늘 지금과는 이질적인 공기가 나를 감싸는 느낌을 받는다.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코펜하겐의 한 마을의 냄새와 소리와 시간을 느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그림을 보고 “나는 그의 작품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라고 말했다. 릴케와 같은 감성을 가졌을리 없을 나도 그의 그림이 걸어오는 나즈막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음은 그가 화폭에 담아 놓은 미지의 뒷모습도 한 몫을 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을 가꾼다는 일은 리더에게 있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성품을 가꾼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리더로서 나의 뒷모습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