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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ug 13. 2023

가벼운 이야기가 필요할 때

<밀수>, 류승완


퇴근은 5시, 약속은 9시였다.


뜨는 4시간을 채우기 위해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 태풍이 지나간 뒤, 아마도 올여름 마지막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가득 차 있었고 산만한 분위기의 서점은 더이상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 했다. 가까운 극장의 상영시간표를 봤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서점이나 극장을 간다. 그곳들을 다녀오면 머릿속애 꼬인 실타래가 풀려 멘솔 향이 나는 것 같다.


6시 10분에 <밀수>가 있었다. 유튜브 리뷰를 미리 봤던 터라 가볍지만 괜찮은 영화라는 걸 알고 있었고, 최근에 본 <짝패>는 꽤 괜찮았다. 헝클어진 실뭉치로 들어찬 머릿속을 풀어내 줄 만한 재미와 몰입감이 있을 것 같았다.

 

그 기대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도둑들>, <범죄의 재구성> 같은 최동훈 감독 스타일의 케이파 영화가 떠오르는, 인물 간의 배신, 담합이 수시로 바뀌면서 긴장감은 쫀쫀해지고 중반부 이후 몰입감이 확 오른다. 8할은 박정민 배우가 맡은 장도리 덕분이다. 우둔하지만 정감이 가는 악당이다. 권필삼(조인성)의 아이스 피크 액션 신은 <베테랑>과 <짝패>의 스피디함과 독창성이 떠오른다.


요즘 영화들의 평균 상영시간인 2시간 30분보다 조금 짧은  러닝타임이 지난 뒤 따릉이를 타고 도산공원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도 마침 오늘 영화를 보고 왔다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란다. 좋은 영화고 재밌었지만 시종일관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극장을 나설 때 머리가 한동안 아팠다고 했다.


삶이 복잡하고 무언가 몰입이 잘 안 될 때, 이런 가벼움도 필요하겠지 싶다. 그치만 나는 내일 일어나면 나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 하겠지. 그저 해녀 역을 맡은 김혜수의 얼굴이 유난히 하얬다는 것 정도만 간간히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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