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라즈 Nov 08. 2020

1년 간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

혼자 사는 바쁜 유학생은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플라스틱과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로 웨이스트 생활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나 역시도 비슷한 시점에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직접 실천해보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 11개월이 지난 지금, 변화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미국에서 제로 웨이스트 실천하기


분리수거가 철저한 한국과 독일에서 살다가 미국에 오게 되니, 재활용을 열심히 하지도 않게 되고, 비닐이나 일회용품 사용도 늘었다. 분명히 너무 편리했고, 또 시간을 절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편리한 플라스틱 제품에 많이 의존해왔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에 대한 죄책감이 늘었다. 한국에서 분리수거를 할 때면 분리수거를 행위 만으로도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을 줄일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특히 내가 사는 주에서는 재활용이 그다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어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콘텐츠를 찾아보면서 미국에서도 충분히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할 수 있고,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며 (물론 접근하기는 어려웠고 강제성은 적었다.) 실제로 그런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더 앞서서 실천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1년 정도 지난 지금은 현실적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완전하게 실천하긴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Less waste를 실천하고 있다.


시작은 장바구니


식료품 점에 갈 때 장바구니를 가져가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미국 식료품 점에서는 작은 비닐에 물건을 나누어 주는데, 그러면 들고 올 때도 꽤나 불편하다. 게다가 비닐봉지가 한국과 달리 너무 약해서 잘 찢어지기 때문에 물건이 흐르기도 하고 재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커다란 장바구니를 이용하니 오히려 장 본 물건을 가져오기 더 편리했다. 계산대에서 직원이 포장하기 전에 미리 장바구니를 가져왔다고 말하면 친절하게 대응하며 내 장바구니에 별도로 물건을 담아주었기 때문에 별로 불편한 것도 없었다. 


그다음엔 천으로 된 주머니를 장 볼 때 가져가서 야채와 과일을 개별로 담아보았다. 보통 비닐에 야채를 담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천 주머니를 가져간 것이다. 약간 번거롭긴 하지만, 장바구니 안에 넉넉하게 넣어두고 장을 볼 때 함께 챙겨가는 걸 습관화하다 보니 나중엔 익숙해졌다. 이렇게 장을 보다 보니 필요한 만큼만 야채를 담게 되어서,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긴 패키지로 구매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점점 익숙해지니까 생활 습관을 소소하게 바꾸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제로 웨이스트 물건을 구매하는 일에도 재미를 붙였다. 물론 조금 비싸긴 하지만, 미국엔 이미 다양한 친환경, 생분해가 가능한 대체품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어 골라서 구매하는 재미가 있었다. 


지퍼락 백을 대체할 실리콘 백도 구매해 보았는데, 사실 실리콘은 지퍼락에 비해서 재사용하기는 편리하지만 종국에는 이 실리콘이 생분해되는데 플라스틱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어서 약간 후회했다. 이미 사버린 실리콘 백은 이용을 하겠지만 앞으로 실리콘 제품을 되도록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글라스락을 구매해서, 남은 잔반이나 남은 야채를 지퍼락 대신 글라스락에 보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지퍼락 사용이 많이 줄었다.

 

비닐랩 대신 비즈왁스 랩도 이용할 수 있다기에 한번 구매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장단점이 분명했다. 야채를 보관할 땐 일반 랩보다 더 좋은 것 같고 씻어서 재사용하기도 편리하지만, 왁스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엔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 비닐랩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닐랩 사용을 점점 줄여나갈 계획이다. 


휴지 없이 살아가기


제로 웨이스트 물건을 사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실제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것일 테다. 나는 내 쓰레기통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휴지의 사용량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 휴지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방에 있는 크리넥스 휴지를 바로 치운 후, 안 쓰고 가지고만 있던 손수건을 빨아서 같은 위치에 잘 개어두었다. 더러운 걸 닦을 때 휴지 대신 손수건을 이용해서 닦고, 더러워진 손수건은 빨래함에 같이 넣어뒀다가 옷가지와 함께 세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이렇게 하니 아주 아주 더러운 걸 닦을 땐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차피 버릴 예정이었던 옷가지를 잘라서 걸레로 만들었다. 손수건과 비슷한 위치에 놓아두고, 청소할 때는 걸레를 대신 사용했다. 굉장히 더러운 건 걸레로 닦은 후 빨랫감이 쌓이면 삶아 빨았다. 물티슈도 손수건에 물을 묻히거나 세제를 뿌린 후 닦아내는 것으로 대체했다. 몇 번 하다 보니 손에 익어서 생각보다 크게 번거롭지 않았다.


화장실

방 안에서 일단 휴지 없이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후 나의 관심은 화장실로 옮겨 갔다. 일단 남들 다 하듯이, 재사용이 가능한 면 화장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화장실에도 손수건을 몇 장 놓아두고 사용했다. 

물론 볼일을 보고 난 후 사용하는 바로 그 화장실 휴지(일명 똥 휴지)는 도저히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었다. 극단적 제로 웨이스터들은 비데를 사용한다는데, 유학생 입장에서 아파트에 비데를 설치하는 것도 곤란했다. 하는 수 없이 똥휴는 그냥 사용하고는 있는데, 대신 재생지로 만들고 비닐 대신 종이로만 포장되어 플라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똥휴를 구매해서 죄책감을 덜고 있다. 


주방

방과 화장실의 성공으로 나는 이제 부엌에서 Zero 휴지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평소에 휴지로 닦아내던 것들은 낡은 천을 잘라서 만든 걸레로 닦아내었다. 페이퍼 타월은, 면으로 된 주방 전용 타월을 구매해서 사용했다. 하지만 요리하고 남은 기름기는 면으로 닦아내는 것보다 모아 둔 커피 찌꺼기를 뿌려서 기름기를 흡수시킨 후에 버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은 후 면 타월 사용량마저 극적으로 줄었다.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온 걸레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못 쓰는 냄비에 넣고 베이킹 소다를 부은 물에 담가 삶은 후에 세탁기에서 탈수시켰다. 그러면 손빨래를 하느라 힘을 쓰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바쁜 유학생활 중에도 충분히 병행할 수 있었다. 오히려 걸레가 깨끗하게 소독되어 재사용할 때도 찜찜함이 남지 않았다.  


이렇게 실천하다 보니 나는 불가피하게 물건의 포장지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공부를 하고 남은 종이, 그 외 머리카락 따위를 제외하고는 내가 발생시키는 일상의 쓰레기의 양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화장실 제로 웨이스트


비누

제로 웨이스터들은 샴푸나 바디워시의 통도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대신 샴푸바와 고체 비누를 이용한다고 한다. 나도 이런 실천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일단 기존의 샴푸와 바디워시를 다 소모한 후에 고체 비누와 고체 샴푸에 도전하게 되었다. 고체 비누 중 가장 유명한 도브 뷰티바(중성비누)를 써본 소감은 놀라웠다. 향도 좋고 거품도 잘 나고 피부에도 잘 맞았다. 같은 도브에서 나온 바디워시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바디 워시를 바꾸는 일은 정말 한순간에 끝났다. 


샴푸

문제는 샴푸였다. 뷰티바로 머리도 같이 감았는데, 지성 두피인 나는 곧 두피염이 생겨서 곧바로 그만두었다. 하지만 샴푸를 계속 사용하고 싶진 않아서 대안을 살펴보다가, 다른 회사에서 나온 지성용 샴푸바를 여러 개 시도해봤고, 마침내 내 두피와 맞는 샴푸바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거품도 잘 나고 상쾌한 향도 나고, 오히려 헹구고 나면 미끌거리지도 않아서 기존 샴푸보다 더 마음에 든다. 샴푸바는 조금 힘든 여정이 필요했지만 그만큼 고생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컨디셔너는 아직 남은 제품이 있어서, 전부 사용한 후에 대체품을 찾아볼 계획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첫 실천은 가진 무조건 물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다.) 한국에는 동구 밖 브랜드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국에 가게 되면 꼭 도전해볼 작정이다.


칫솔

칫솔도 사용하던 플라스틱 칫솔 사용이 끝난 후에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제품으로 대체했다. 포장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박스에 담겨와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비닐이 붙은 종이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사용감은 플라스틱 칫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칫솔모가 섬세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치실도 있는 것을 다 사용한 후, 유리용기에 담긴 대나무 치실을 도전해 봤는데 오히려 기존의 플라스틱 치실보다 더 튼튼하고 사용감이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약간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치약

문제는 또 치약이었다. 고체 치약을 처음 도전해 봤는데, 씹어서 거품을 낸 후 칫솔질을 하는 방식의 사용감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불소 비포함 고체 치약이었다. 미국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소에 대한 저항감이 심해서 불소 비포함 제품이 유독 많았다. eco-freindly  타이틀이 붙어 있는 것, 특히 고체 치약은 죄다 불소 비포함 제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치약에 불소가 포함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치과 의사인 지인의 말을 신뢰함.)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찾을 때까지는 일반 치약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전에 나는 불소가 포함된 고체 치약 브랜드를 찾아냈다. 지금 치약을 다 사용하고 나면 다음 치약으로 구매할 예정이다. 한국에는 불소가 포함된 고체 치약이 많다고 한다. 


고체 치약, 고체 샴푸, 고체비누는 여행 갈 때 공항에서 액체류로 반입 금지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여행 갈 일이 없어져서 다소 안타깝다. 


화장품

원래 화장을 잘 안 하는 데다가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감소하고 탈코르셋의 영향도 받아 더더욱 안 하게 되었다. 대신 로션 등의 기초화장품을 새로 구매할 때는 플라스틱이 아닌 용기에 담긴 제품을 구매하려고 한다. 또 제로 웨이스트 화장품 (포장 용기가 비 플라스틱인 제품)이 꽤 많기 때문에 다음에 화장품이 필요하면 그런 제품 위주로 구매해볼 계획이다.



주방 제로 웨이스트

집안일을 직접 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느낄 것이다. 쓰레기가 가장 많이 생기는 공간은 바로 주방이라는 것을. 일상의 물건을 대체하는 과정을 모두 끝낸 나는 주방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노력이 모두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주방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마시는 물

생수병은 페트병이라 재활용이 잘 되긴 하지만, 애초에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생수 사용을 줄이기 위해 보리차를 끓여먹는 일에 도전했다. 처음엔 되게 귀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귀찮지는 않았다. 브리타 필터로 거른 물을 끓여서 보리차 티백을 담가 두면 맛있는 보리차가 되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같이 물을 끓이면 되었다. 보리차 티백에 익숙해진 나는 곧 티백 대신 보리차용 볶은 보리를 한인 마트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물에 바로 넣어 보리차를 끓였다. 티백 껍데기마저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브리타 필터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브리타 필터를 회수하는 서비스가 있고, 현재 상황에서는 생수를 구매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되어서 일단 브리타 필터를 사용 중이다. 



야채 

앞서서 식료품 점에서 장바구니를 가져가서 야채를 천 주머니에 담아온다고 했는데, 점차 이 마저도 다른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야채 박스

일단 로컬 농장에서 직배송되는 야채 배달 서비스를 구독했다. 재활용이 되는 종이박스에 담겨오고 개별 포장을 최소화하며, 흠이 생겨 상품으로 출하되지 못하는 (그러나 신선하고 품질에 문제없는) 야채와 과일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배달받아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홀푸드에서 파는 오가닉 야채보다 훨씬 신선하고 맛있었다! 직접 갈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기도 했고 포장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부담도 줄었다. 지역 농장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그리고 대형 체인 식료품점 대신 파머스 마켓도 이용한다. 사실 집 근처에 있는데 잘 몰라서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는데, 재래시장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로컬에서 생산된 야채를 저렴한 가격에 개별로 구매할 수 있고 새로운 종류의 야채나 먹거리를 도전해볼 수도 있어 좋은 것 같다. 


배달음식

원래 배달 음식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미국 시골 음식은 보통 맛이 없다.) 배달음식의 포장지를 줄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군것질 

사실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음식은 직접 해 먹게 되었는데 (파는 건 맛이 없어서.) 그러다 보니 음식 포장지가 생기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과자는 좀 달랐다. 물론 한국만큼 과대포장을 하진 않지만 군것질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포장 쓰레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스낵 섭취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일 겸 직접 만들어 먹기로 작정했다. 홀푸드 같은 곳에서 포장지 없이 곡물이나 견과가 구매 가능하기 때문에, 거기서 구매한 견과를 구워서 스낵처럼 만들어 먹고 있다. 


기타 식료품

되도록 포장이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나 종이, 캔에 담긴 것을 구매하게 되었다. 다행히 미국 식료품 점에는 선택지가 꽤 많이 있어서 대체재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라면 재래시장에서 직접 포장용기를 가져가서 구매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아직 미국의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그런 식료품점은 찾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쓰레기가 나온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최대한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을 피하려고 한다. 

그 외에도 맛있게 마시던 탄산수도 줄이고, 티백도 줄이고 (잎차를 구매), 아무튼 많이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거트도 포장지가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재활용이 되긴 하지만) 집에서 만드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커피 

나와 룸메이트는 중고로 산 큐리그로 몇 년째 캡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대학원 생에게 커피는 삶의 동반자와도 같은 법.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굳이 캡슐이어야 할까? 

일단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드라마를 보면서 멸치 똥을 따듯이 (...) 캡슐 커피의 원두 찌꺼기를 긁어내고 남은 캡슐은 재활용해보았다. 하지만 곧 그것마저 귀찮아졌다.  

제로 웨이스터들은 프렌치 프레소나 핸드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마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사용 가능한 커피 캡슐에 원두를 담아 마시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는 아직 문제가 많다고 한다. (모터에 무리가 간다거나, 일단 캡슐에 원두를 넣는 게 귀찮아 보인다거나 등등.)

나는 당장 원두를 사서 직접 갈아먹는 방식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사실 집에 미리 사놓은 커피 캡슐이 꽤 많았다. 룸메와 공동사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룸메와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다 마신 후에, 대신 캡슐은 재활용하고 원두 찌꺼기는 재사용한 후에, 큐리그를 처분하기로 하였다. 

그 와중에 못 참고 시험 삼아 집에 마침 있었던 베트남 커피 드리퍼로 커피를 추출해봤는데 생각보다 꽤 맛있었다. 베트남 드리퍼는 커피필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필터 거름망 종이 사용도 없다는 장점이 있어서 일단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설거지

아무래도 식기 세척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식기 세척기 세제 자체는 물에 다 녹기 때문에 아직 이 부분은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식기세척기용 세제를 새로 구입할 때, 포장 용기가 종이인 것으로 구매하였다. 

손 설거지의 경우, 기존의 설거지용 수세미를 다 사용하고 나면 천연 수세미를 사용해 볼 계획이다. 고무장갑은 기존에 사놓은 것이 있어서 아직 계속 사용 중이다. 설거지용 솔은 동물 털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것도 후에 비건용으로 바꿀 예정이다.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가 거의 완료된 모습.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가공되지 않은 야채를 바로 사다 보니, 손질하다 보면 남는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게 되었다. 한국이나 독일에서였다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면 그만이지만 미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냥 매립 쓰레기에 포함되거나, 싱크대의 분쇄기로 갈아버린다. 하지만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미국의 제로 웨이스터들은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퇴비 만들기(composting)가 아주 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뒷마당도 없고 아파트에서 사는데, 언제 퇴비를 만들고 지렁이를 키운단 말인가. 엄두가 안 나서 한참을 미뤘다. 

사실 식물을 키우는 동안 (가드닝 취미는 원래 있었다.) 죽은 식물이나 남은 흙을 모아둔 걸 야외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는데, 하루는 그것들이 장대비에 와르르 무너지는 걸 보고 꽤 충격을 받게 되었다. 저 흙을 차라리 통에 잘 담아서 퇴비로 만들어 내 사랑스러운 식물에게 양분으로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의욕이 솟아서 별안간 바로 퇴비 만들기에 돌입했다. 

주로 미국 집에서 compsting 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 같은 걸 보면서 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들을 베란다 구석의 통에 담아 모았다. 가이드에 따르면 야채를 자르고 남은 부분, 계란 껍데기, 과일 껍데기뿐만 아니라 똥휴를 쓰고 남은 휴지곽 같은 종이 쓰레기도 같이 처리(?) 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가드닝 하고 남은 흙더미에 말라죽은 식물들의 잔해와 음식 쓰레기를 뒤섞었다. 가이드에서 대로 종이 조각도 뿌려주고 물도 좀 뿌려주었다. 처음엔 냄새가 좀 났지만, 공기가 통해야 한다는 말에 뚜껑을 살짝만 열어두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니 정말 신기하게도 음식 쓰레기들이 거의 다 분해되어 사라진 걸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분해가 끝나니 벌레들도 사라져 있었다. 흙 상태도 훨씬 신선하게 느껴져서 마침 다른 식물 분갈이할 때 바로 섞어서 사용했다. 

나는 신이 나서 나는 가을 동안 길에서 떨어진 낙엽이나 나뭇가지 부스러기도 모아서 같이 퇴비함에 담아두었다. 퇴비화 되는 과정은 몇 달이 걸리는데 음식 쓰레기는 매일 나오니 바로 다음 퇴비함도 만들었다. 퇴비를 담을 통도, 새로 사는 게 아니라 중고 물건을 파는 상점에 가서 쓸만한 거대한 통을 싸게 주워오다시피 했다. 앞으로 좀 더 발전시켜서 당분간 가드닝에 필요한 흙을 새로 사지 않고 양분이 소진된 흙을 퇴비로 재사용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빨대

나는 원래 빨대를 잘 안 쓴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길에서 음료를 사 마실 일도 없어져서 빨대를 쓸 일도 없었다. 하지만 대안 빨대를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일단 실리콘은 생분해가 안되므로 후보에서 제외. 스테인리스 빨대는 위험하다고 해서 제외. 그렇다면 대나무나 다른 재질의 빨대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나에겐 선물로 받은 마테차 용 봄비야 빨대가 있다는 점이다. 남미에서는 마테차를 봄비야라는 항아리에 넣고 전용 빨대에 넣어 마시는데, 이 빨대가 이미 제로 웨이스트 물건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마 다시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때가 돌아온다면 새로 구매하기보다는 이 봄비야 빨대를 가지고 다니게 될 것 같다. 

봄비야 빨대. 귀여움.



제로 웨이스트 빨래

많은 제로 웨이스터들이 세탁할 때에 소프넛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 역시 소프넛에 도전해 보았는데, 세척력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물론 세척이 잘 되긴 하는데 기존 세제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소프넛을 삶은 물을 쓰면 더 낫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럴 엄두가 나진 않았다. 그리고 소프넛을 사용하면서 원산지인 인도의 소프넛  가격이 올라 원래 소프넛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런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소프넛 사용이 저어되었다. 

대신 액체 세제를 대체하여 가루 세제와 고체 세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액체 세제는 운반하는 동안 탄소 발자국도 많고, 또 용기가 플라스틱이라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나는 고체 세제를 소량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하였고, 현재까지는 세척력이나 여러 과정에서 모두 만족하고 있다. 

건조기에도 양모 볼을 넣는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건조 sheet가 많이 남아 있어서 가진 것을 다 사용한 후에 도전해볼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동물 털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도 고민 중이다. 건조기가 아예 없었다면 사지 않았을 텐데, 지금 사는 아파트에 건조기가 빌트인으로 있어서 일단 사용 중이다. 


제로 웨이스트 청소

집안일이 서투르던 시절엔 그냥 물티슈로 모든 청소를 해결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천벌 받을 일이다. 생분해도 안 되는 물티슈를 그렇게 남용하다니.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먼지떨이로 먼지를 털어내고, 세제를 뿌리거나 물로 적신 걸레로 닦아내고 다시 마른걸레로 닦아낸 다음 걸레를 빠는 방식으로 청소를 하고 있다. 조금 귀찮지만, 노동력은 물티슈를 사용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사는 미국 집은 싸구려 카펫이 깔려 있어서 바닥 청소는 불가피하게 청소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 그 바닥 먼지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드우드 집으로 옮기게 되면 빗자루와 걸레질 등으로 대체하게 될 것 같다.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

나는 미국에 오기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던 사람이었다. 극단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덕질 굿즈를 제외하고는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은 후 미니멀 라이프를 다시 실천하게 되면서 생각보다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 없다고 무작정 버리는 건 쓰레기만 만들어내는 일. 

나는 일단 입고 싶지 않지만 쓸만한 옷가지들과, 가전제품들과 기타 가구들을 모아서 지역 시민단체에 기부했다. 다행히 미국에도 donation을 받는 곳이 굉장히 많았다. 이런 단체를 방문하면서, 나는 또 내가 중고 물품을 이런 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의 또 다른 원칙이 중고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니, 이 목적에도 부합하고 여러모로 좋은 일었다. 나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처음으로 미국의 지역사회에 내가 일부분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다행인 점은, 내가 유학생인 터라 내가 가지고 있는 가구나 물건들이 대부분 이미 중고품이라는 점이었다. 잘 사용해서 내가 떠날 때에도 중고로 재판매하거나 기부하게 되면 쓰레기 생산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도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게 되었다. 박사과정에 오게 되면서 전공을 바꾸면서 필요 없는 책도 생겼고, 더 이상 보지 않는 책도 생겼다. 그냥 가지고 있어도 좋겠지만, 나는 굳이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후배나 지인들에게 그냥 나눠주었다. 

그 외에도 가진 물건을 버리게 될 때, 재활용품인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분류해서 버리게 되었다.


쇼핑을 할 때

이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포장지의 재질은 무엇인지, 담긴 용기의 재질은 생분해가 되는지, 재활용이 되는지, 재사용을 한 것인지, 혹은  재사용이 되는지를 따지게 된다. 물론 업체에서는 재활용이 된다고 해도 실제로 재활용이 잘 되는 재질인지도 따지고 그러다 보니 생분해가 되는 재질이 가장 최우선이 된다. 

그러다 보니 물건 선택의 폭이 크게 줄었는데, 나는 어차피 고르는 걸 싫어해서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이 점이 아주 편하다. 그냥 유일한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제로 웨이스터들은 옷을 구매할 때도, 섬유의 재질을 고려하여 합성 섬유는 피하고 면이나 리넨 소재의 옷을 구매한다는데 나는 코로나 이후 옷을 딱히 구매하지 않아서 아직 이 점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앞으로 새 옷을 구매하게 되면 소재를 고려할 것 같다. 

이 밖에도, 차 방향제도 기존에 쓰던 것에서 다른 재질로 바꾸게 되었고, 캔들이나 디퓨저도 따져가며 구매하게 되었다. 초를 켤 때도 라이터 대신 성냥을 쓰고 있다. 옷이나 문구류 쇼핑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다 쓰레기라고 생각하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구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전자제품의 경우 포장이 불가피한데, 이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 같다. 


버릴 때

물론 완벽한 제로 웨이스터는 아니고 그냥 쓰레기를 줄이려고 하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쓰레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건을 고장 내지 않고 잘 사용해서 필요하지 않게 되면 기부를 하거나, 최대한 재활용을 하고 (미국에서도 가능하다!), 유리병 같은 것은 세척한 후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고, 낡은 물건도 수리해서 쓰는 습관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생각해볼 점


제로 웨이스트의 핵심은 물건을 사용할 때 이 물건의 소멸도 함께 고려한다는 점이다. 비건의 경우, 물건이 만들어진 방식과 과정을 고민하는데 제로 웨이스트는 물건의 사용 후 버려지는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보통 물건을 구매할 때, 내가 어떻게 사용할지만 고민하게 되는데 제로 웨이스트를 한다는 건 매사에 한 단계 더 고민해야 한다.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긴 하지만, 인류가 원래 고민했어야 하는 문제를 이제까지 미뤄왔다고 생각하면 차마 외면할 수가 없다. 


제로 웨이스트를 하게 되면서 좋은 점은, 쓰레기의 양이 줄어들게 되어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횟수도 줄었다는 점이다.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도 어차피 많은 수고가 들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아파트 입구에 있기 때문에 꽤 귀찮은 일인데 이 과정이 많이 줄었다.  또,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화 하니 쓰레기에서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는 점도 좋은 것 같다. 룸메이트가 협조를 준다면 쓰레기의 양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내 개인 쓰레기를 더 줄이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소비재(휴지 따위)의 소비가 줄어드니 생활비도 꽤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 면 타월 등을 구매하느라 큰 비용이 들었지만, 고정비용이 클 뿐, 가변비용은 0이니 종국에는 생활비 지출이 더 줄어들게 된 것이다.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지만 진짜 일상 속의 사소한 습관들을 천천히 바꿔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딱히 많이 힘들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되는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제로 웨이스트 생활방식에 도전해볼 수 있었으면 해서이다. 전부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손수건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본인은 자각하지 못해도 휴지 사용이 엄청나게 줄어들 테니까. ^^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예전에 어머니나 할머니가 생활하던 방식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약간 궁상맞다고 생각될 정도로. 옛날엔 자원을 아끼느라 그렇게 절약하며 살아오셨겠지만, 그게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과 같다는 점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 제로웨이스터들이 말하는, 재사용, 재활용 등은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옛날 한국의 아나바다 운동과도 닿아 있다. 


현대에 이르러 자본이 풍부해지자 가사노동을 줄이고 좀 더 편리해지기 위해 많은 상품이 개발되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플라스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사실 개인이 이렇게 힘들게 노력하는 것 보다는 정부와 기업이 제품 생산할 때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과적이다. 앞으로 사회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지구와 공존할 수 있도록,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 박사 유학 와서 여태 뭐 했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