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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Feb 15. 2024

내 강의는 위험한 성교육?

새로운 강의안도 계속 만들고 있지만 기존 강의안도 업그레이드를 해 나간다. 당연하겠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강의하고 있는지 보는 게 정말 재밌다. 어쩌면 이렇게 나랑 내용도 방식도 다른지!


인간은 편견 덩어리이고 나도 그렇다. 성교육 강사가 남성일 때 과연 성평등을 위한 성교육이 진행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이 있다. 이런 편견을 인정하면서 남자성교육을 연구하는 남다른성교육연구소의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남자성교육에 그만큼 내가 고민이 많다는 뜻일 테니까. 성교육강사 양성과정 열리면 꼭 지원해야지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내 편견은 유효해서 남성인 성교육 강사를 보면 경계하게 된다. 죄송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남자 아동청소년에게는 남자선생님이 더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런 이유로 여성 아동청소년의 성교육은 여성 성교육 선생님이 맡게 되는 걸 테니까.


성교육 강사의 성별과 상관없이 다른 강사의 성교육 수업을 보면 조금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뭐, 그런 이유로 내가 성교육 강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긴 하다.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해서 오늘 잠깐 얘기해보고자 하는데 글을 적는 이 순간조차 좀 두렵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틀렸어!" 라면서 손가락질을 하면 어쩌지.


"둘이 밀폐된 곳에서 놀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성관계를 하게 됐거나,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된다. 밀폐된 곳에서 놀지 말라고 했는데 놀았기 때문이다. 어른의 말을 어겼으니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잘못'으로 인한 결과니까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위급성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채 친구에게나 고민 상담하는 정도에서 일을 키우게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가르치기는 너무 쉽다. 하지만 이건 어른들이 편하고자 하는 말이지 정말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르침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안 가르친다. 서로 몸을 만질 때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성관계를 하게 되면 피임을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성과 남성이 밀폐된 곳에 둘이 있어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공대 갔다는 이유로, 같이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는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대학교 기숙사가 혼숙인 경우도 많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둘이 빨가벗고 자도 아무 일 안 생기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성교육이 진짜 성교육 아닐까?


"엄마는 네가 자위하거나 성관계를 하게 될까 봐 무서워." 

아이가 걱정될 때, 엄마 본인의 감정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게 자위, 성관계에 대한 것일 때도 유효할까? 그러면 아이들이 엄마 생각을 하면서 조심하게 될까?


아이가 자위를 하거나 성관계에 호기심을 갖고 이를 시도하게 되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아주 잘 크고 있다는 신호. 물론 자위나 섹스에 중독되어서 학교나 인간관계를 등한시하는 등 중독 수준까지 간다면 위험하겠으나 그렇지 않다면야 문제 될 것 없다.


아이가 잘 커가고 있다는 신호를 양육자는 두려워할 수 있다. 언제까지 애기일 줄 알았던 우리 아이도 키스와 섹스를 좋아하는 성적존재라는 것, 내 손을 떠나 다른 파트너를 만나 친밀함을 나눌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런 양육자의 두려움은 오직 부모의 감정이다. 아이 때문에 내가 불안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건 착각이다. 사실은 부모가 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드는 불안감이다. 이런 불안감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상황에 도움이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는 것이 건강한 방향이다. 양육자가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성장하지 않거나 독립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내 품 안에 끼고 살 수 있는 아기가 아니다.


사춘기부터 아이들은 독립을 시작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참 부족하고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시도한다. 그렇게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어른으로 성장한다. 얼마나 열심히 시도하고 실패하는지가 어떤 어른이 될지를 결정한다. 독립을 시도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아이는 독립적으로 성공하는 어른이 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내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 비폭력대화에서 말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비폭력대화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성적 발달은 부모와의 갈등이 아니다. 이걸 오해하면 아이 성장을 발목 잡는 양육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안 가르친다.


자위해도 괜찮다고 가르친다. 성교육 강사에 따라 지식을 습득한 경로가 다르다. 내가 지식을 습득한 경로에 따르면 자위 많이 한다고 해서 키가 안 자라거나, 탈모가 생기거나, 음경의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위해도 괜찮다고 가르친다. 자위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위를 통해서 내 몸 어디를 만지는 게 기분 좋은지, 어디를 만지면 불쾌한지 알아갈 수 있다.


다만 자위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가르친다. 기구 사용과 관련해서는 남성에겐 아무 곳에서 음경을 넣지 않도록 가르치고 여성에게는 아무것이나 음순에 넣지 않도록 가르친다. 자위할 때는 사적공간에서 해야 누구도 자위하는 네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 너한테도 안전하고, 혹시나 갑자기 누군가 네가 자위하는 걸 보게 되는 불상사로부터 타인을 지켜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적공간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사적공간을 획득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이고 양육자와 함께해야 하는 건 어디까지인지 가르친다. 뭐 예를 들면 자기 방은 자기가 쓸고 닦고 정리해야 하며, 그 방법을 잘 모르겠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 그리고 내 방 외에서 일어나는 가사노동에 대해서도 이제 한 파트는 가져가서 분담할 것을 가르친다.


자위 이후 해결법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정액이건 질액이건 몸에서 나온 뭔가가 속옷, 이불, 방석, 책상 어디든 묻었다면 닦고 빨래할 것. 빨래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면 배울 것.


내가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위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방법은 없다. 아이들에게는 만약을 대비해서 전부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뇌가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임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일부 똘똘한 아이들은 1만 가르쳐줘도 10을 안다. 이런 애들은 비교적 임신예방이 잘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른들의 바람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구체성이나 응용력이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원리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전부 응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창의적으로 응용하게 될 수도 있다. 콘돔 대신 비닐봉지를 사용해서 피임을 도모하는 것처럼.


심지어 현실에서 1을 배워서 10을 깨닫는 아이는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10을 가르쳐도 7이나 8 정도 알아듣는다. 우리 모두 뇌발달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강의하듯 10을 가르쳐줘도 임신을 예방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몇몇 성교육 강사들의 성교육 수업을 찾아보며 '위험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양육자분들은 내 강의를 '위험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걸.


너희 부모님께 다 말한다?

이런 말이 협박으로 통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궁금하다. 혼자서 고민하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자유롭게 공부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다. 양육자에게 돈을 받는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양육자와 아이들의 이해관계가 정말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떤 길이 되건 다들 무탈하기를 바랄 뿐인데 이런 내 마음이 위험해 보일 수 있다는 게 걱정이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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