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체 Feb 29. 2024

강사? 이제 그만 포기할까?

밤새 꿈속에서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맸다. 이쪽 길로 가도 양쪽 길이 똑같고 저쪽 길로 가봐도 다시 그 길이 그 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도 다시 아까 거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천천히 벽을 짚고 가보자! 결심하고 벽에 손을 짚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왜 꿈에서까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걸까.


사실 요즘 길을 잃었다. 2월에는 강의 신청이 1월만큼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3월에는 예약된 강의가 별로 없다. 아마 개학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때는 학교강의와 기관강의를 뚫어야 한다. 그럼 기관에 소속되어 있어야 할 텐데 학교강의를 내보내줄 기관에 소속되어 있지가 않다. 


크몽이나 네이버 엑스퍼트 같은 곳에 추가로 프로필을 올려볼까 싶기도 하고, 숨고에 프로필을 더 잘 수정해 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생각이 복잡해서 그런지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강의 -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 의 커리큘럼을 잘 정리해서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업로드해보려고 하는데 막혀 있다.


심지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에서 진행하는 폭력예방교육강사양성과정에 지원했었는데 탈락했다. 올해 1년 동안 그 과정을 밟으며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는데 너무 허망하게 탈락해 버렸다. 서류 제출한 걸 다시 펼쳐보니 통계자료를 잔뜩 인용하고 출처표기조차 하지 않았더라. 기본을 지키지 않은 자, 결과는 탈락 일지어다.


양평원 과정을 2024년에 밟으면 2025년부터는 학교강의를 나가기가 수월해졌을 텐데 조금 더 어렵게 됐다. 마음이 복잡하다. 물론 학교강의를 나가는 방법은 이 경로 말고도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올해 계획이 이거였다 보니까 좀 무너지게 된달까. 다른 경로를 또 열심히 찾아보면 되겠지만 찾아볼 마음이 들지 않는달까? 지금은 그런 마음 상태가 되었다. 길을 잃은 거겠지.


그러다가 근처에서 성교육 명사, 구성애 선생님의 강연이 열려서 강연을 들으러 갔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선생님의 성함을 알고 있다. 우리 세대가 선생님의 성교육을 듣고 컸나?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이 선생님의 성교육을 들으며 우리를 가르치셨다고 해야 하나? 성교육 분야의 1호 스타강사로 아침방송이고 저녁방송이고 모두 휘어잡으셨었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선생님의 강의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여성의 몸에 대해 깊은 이해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부모와 양육자들이 자녀들의 성교육을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함께 공부해 가며 성교육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선생님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티브이가 아니라 실제로 뵈어서 그런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시더라. 선생님 강의 열릴 때마다 또 들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호대 출신이시라 그런지 몸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정말 우주 같았다. 


에너지와 재치가 넘치는 강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질문을 빙자해서 선생님을 뵈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했었고 성교육 강사를 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며 말씀드렸더니 열심히 들어주시고 응원의 말씀까지 해 주셨다. 어찌나 힘이 나던지! 그동안 가족이나 친구들, 가까운 지인이나 선배님들에게 받는 응원과 지지도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또 다른 에너지로 다가왔다. 내가 이 분야를 꿈꾸지 않았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 한결 같이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며 살아오신 선생님, 이제는 내가 그 선생님과 같은 분야를 준비하고 있다는 게 꿈만 같다.


강의 신청이 잠잠해지니까 자신감이 바로 쪼그라들었다. 강의신청을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혹시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 주면 좋겠다. 혹시 아이들 방학이 끝나서 그런 거라면 나도 조금 포기하고 내려놓는 게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공부 열심히 하면서, 간혹 들어오는 강의가 있다면 최선을 다 하면서, 커리큘럼 개발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