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
거울을 봤다. 안색이 파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로션을 바르는 것조차 귀찮아 괜히 한숨이 푹 나온다.
로션을 바르며 다시 거울을 봤다. 못생겼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 기분 전환을 해볼까 하다 그마저 귀찮다.
그냥 또 어제와 같은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눈을 깜빡인다.
밖에 나가면 춥겠지.
옷장으로 가 가장 예쁜 옷 말고 가장 무난한 옷으로 골라 입는다.
전신 거울 앞에 서니 또 내가 보인다.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신는다.
신발이 별론가. 아 모르겠다.
문을 여니 찬 기운이 훅 몸을 파고든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편의점에서 입가심 할 음료를 찾는다.
달달한 카라멜 마끼야또.
편의점 아메리카노는 도무지 맛이 없다.
계산해 주는 알바생 언니가 참 화사하고 예쁘다.
요즘 여자들은 다 날씬해.
다이어트를 결심하다가 손에 들린 마끼야또를 보니 참 내 꼴이 우습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한다.
별 거 아닌 얘기에도 깔깔 대며 웃다가 화장실에 가는데 훑어보는 시선이 여럿 느껴진다.
괜히 치마를 끌어내리며 도도한 척 앞만 보고 걸어간다.
화장실에 갔다 자리로 돌아가는 중에도 기분 나쁜 시선은 줄곧 따라온다.
늦게 온 친구가 보자마자 입술색이 그게 뭐니, 하고 핀잔을 준다.
그래서 내가 남자친구가 없는 거란다.
아침에 분명 바르고 나왔는데 하루종일 덧바르지 않아서 다 지워졌나보다.
우습지도 않은 말에 친구들이 낄낄거리는데 따라 웃는 수밖에 없다.
나의 '남자 사람 친구'라는 저 친구는 나를 위한다면서,
여성스럽게 손수건도 들고다니고 그러란다.
그냥 또 웃어넘긴다.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를 탄다.
분홍색으로 표시가 된 임산부 자리만이 비어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서서 간다.
다음 정류장에서 탄 수트를 빼 입은 남자가 자연스레 분홍색 자리로 가 앉는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창밖을 보며 노래를 듣는다.
어느 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 내리면서 노래를 끈다.
밤길에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는 여자는 없다.
노란 가로등은 환한데도 어쩐지 음침한 데가 있다.
보폭은 넓게, 발놀림은 빠르게, 집에 도착한다.
다시 아침에 불쌍한 내 모습을 비추던 거울 앞이다.
화장을 했는데도 불쌍해보인다.
그냥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화장을 지운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눕는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지만 눈을 감는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겠지만 일단 잠을 청한다.
그리고 평범하게 그렇게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