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끝과 남프랑스의 시작
이제 다시 프랑스 집으로 돌아갑니다.
출발을 앞두고 노르웨이 집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조금 특별하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특별하게 따뜻하고 햇볕이 따사로웠던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 북유럽의 숲과 바람, 대지의 기운을 담아 elg(무스)와 hjort(사슴)로 스튜를 끓였습니다.
노르웨이어로 elg는 북미의 elk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입니다. 노르웨이의 elg는 코가 둥글한 moose이지요. 오늘 사용한 elg 고기는 beef cut 부위로,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했습니다. 반면 hjort는 쫄깃한 식감과 짙은 육향이 느껴지는 부위였고요. 두 고기는 질감도 향도 다르지만, 함께 천천히 끓여내면 마치 서로의 결을 살려주는 리듬처럼 조화를 이루어갑니다.
스튜 안에는 작년 노르웨이 가을 숲에서 따와서 말린 칸타렐(Kantarell) 버섯도 함께 넣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롤(Girolle)’, 한국에서는 ‘샹트렐’ 혹은 ‘황색깔때기버섯’으로도 불리는 이 버섯은, 노란빛의 고운 자태와 깊은 향으로 유명합니다. 버터에 살짝 볶기 시작하면 퍼지는 숲의 향기. 이끼, 나무껍질, 여름 햇살이 스며든 듯한 향이 고기와 어우러지며 스튜에 한층 더 깊이를 더해줍니다.
베이스는 사워크림과 화이트와인 식초 한 방울, 그리고 노르웨이식 베리 젤리를 더했습니다. 약간의 산미와 은은한 단맛이 육향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크리미 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맛을 만들어줍니다.
사이드로는 갓 수확한 노르웨이 감자로 만든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였습니다. 버터와 우유만 살짝 넣어 부드럽게 으깬, 단순하지만 깊고 따뜻한 조화입니다
식탁에 올려진 이 한 그릇은 단순한 스튜가 아닙니다. 지금 이 계절, 제가 머물고 있는 장소, 그리고 그 안에서 고른 재료들이 어우러진, 저만의 방식으로 만든 한 그릇의 기록이지요.
이제 짐은 거의 다 쌌습니다.
다음 집은 남프랑스, 꼬뜨다쥐르. 태양의 색, 허브의 향, 그리고 바다가 내는 여름의 소리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토마토가 주인공이 되는 식탁이 펼쳐지겠지요.
하지만 남프랑스의 여름으로 이어지기 전, 오늘의 이 스튜는 북유럽의 여름을 잠시 마음에 담아두는, 저만의 작은 의식입니다. 계절은 여전히 여름이지만, 장소가 바뀌고, 식탁의 색과 향이 달라집니다. 그 변화 속에서도 저는 늘 같은 마음으로, 저의 리듬을 따라 살아갑니다.
남프랑스 꼬뜨다쥐르, 바다와 햇살, 허브와 토마토가 물든 여름의 식탁 이야기가 곧 시작됩니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첫 식탁에는 아마 잘 익은 토마토와 바질, 그리고 바다에서 갓 잡아온 도미요리를 만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