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행이 준 선물
남프랑스 앙티브에 다시 돌아온 무더위(heatwave)를 피해 북부 이탈리아의 산속의 집으로 왔습니다.
프랑스에 미식의 도시 리옹(Lyon)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북부의 피에몬테(Piemonte) 지역이 있습니다. 이 지역은 말 그대로 미식가의 천국이라 할 수 있어요.
화이트 트러플과 헤이즐넛(초콜릿 브랜드 Ferrero Rocher의 본사도 이곳에 있습니다) 같은 고급 식재료는 물론이고, 바롤로(Barolo), 바바레스코(Barbaresco) 같은 풀바디 레드 와인으로도 유명하죠. 피에몬테에는 알프스 산맥이 지나가는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 지역은 Alpes-Maritimes라고도 불립니다.) 덕분에 이 지역에는 다양한 고도의 고원과 산이 펼쳐져 있고, 그중 랑게(Langhe) 지역에서는 네비올로(Nebbiolo), 발베라(Barbera), 돌체토(Dolcetto) 같은 포도 품종이 잘 자라, 바롤로(Barolo), 바바레스코(Barbaresco) 같은 세계적인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피에몬테 지역에 저희 스키 샬레(Chalet)가 있습니다.
오늘은 샬레를 완성하고 처음으로 근처 산에 올랐습니다. 스키 타운으로 유명한 이곳답게, 주변에는 멋진 등산로가 수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은 Limonetto 마을에서 출발해 Passo di Ciotto Mien을 향했습니다. 피에몬테 주와 프랑스 국경 근처, 해발 2,274m의 지중해를 향한 알프스 - 알피 마리티메(Alpi Marittime)의 장대한 풍경이 길 위에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특히 해발 1765m인 Pian Madoro 구간은 푸른 초원지대라, 양치기와 풀을 뜯는 하얀 소들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알프스의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소 목에 달린 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발리의 전통 음악처럼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치 발리에 있는 저희 Villa Mizu에 가족을 초대해 발리니즈 전통 결혼식을 했을 때, 마을의 사제가 축복을 전하던 순간 뒤에서 울리던 그 음악 같았습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산은 노르웨이의 산과 다르면서도 닮았습니다. 초원과 바위가 번갈아 나타나고, 길가의 들꽃 사이로 야생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인사를 건넵니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나 양의 모습까지, 멀리 떨어진 두 나라임에도 여름의 알프스와 여름의 북유럽이 비슷한 풍경과 공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계절의 숨결을 느낀다는 건, 마치 지구 어딘가에서 이어진 하나의 긴 여름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늘이 전혀 없는 길, 그리고 충분히 챙기지 못한 물 때문에 오늘은 정상까지 닿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걸었습니다. 다음번에는 더 준비된 발걸음으로 이 고개를 다시 찾을 것을 마음속에 약속하며, 오늘의 알프스는 그렇게 나를 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햇빛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풀 향이 다시 바람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강아지 디에고가 잠시 멈춰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던 옆 풀잎 사이에서 아주 작은 네잎클로버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네 잎클로버였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리니, 네 장의 잎 사이로 연한 무늬가 심장처럼 뛰는 듯했습니다. 초록빛 잎맥이 조용히 숨 쉬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치 이 땅이 나를 환영하는 작은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알 수 없는 예감이 스쳤습니다. 언젠가… 이 작은 잎을 다시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책의 7번째 페이지에 그 네잎클로버를 조심스레 보관했습니다. 행운을 불러들인다는 상징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설렘을 간직했습니다. 미래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 이렇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등산은 그렇게 설렘 가득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레시피> Zuppa rustica di legumi e verdure (잡곡과 채소가 듬뿍 들어간 시골풍 수프)
산길을 걸으며 쌓인 피로가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저녁, 영양 가득한 따뜻한 수프 한 그릇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딱이지요.
재료 (4인분)
건 콩·렌틸·병아리콩·흰콩 등 혼합 200g (밤새 불림)
감자 2개 (깍둑썰기)
당근 1개 (작게 다짐)
셀러리 줄기 1대 (작게 다짐)
양파 1개 (잘게 다짐)
올리브유 3큰술
로즈메리·타임·월계수잎
소금, 후추
채소육수(또는 물) 약 1.5L
만드는 법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마늘·당근·셀러리를 넣어 중 약불에서 5~6분 볶아 향을 냅니다.
불린 콩과 감자를 넣고 잘 섞어줍니다.
허브, 채소육수를 넣고 끓입니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1시간 이상 은근히 끓입니다. (콩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소금·후추로 간을 맞추고, 허브 가지와 월계수잎을 건져냅니다.
그릇에 담고 파마산 치즈를 갈아서 올려줍니다. 바삭한 빵과 곁들여서 먹으면 맛있습니다.
따뜻한 수프를 먹으며 더위를 이겨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