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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 – 숲과 계절을 집 안으로 들이는 방법

일상 속의 피에몬테 숲길 산책

by Youmi Sa


8월 15일, 한국은 광복절, 이탈리아는 Ferragosto라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보통 이탈리아에서는 Ferragosto를 전후로 해서 바캉스의 스타일이 달라지는데 Ferragosto 전은 바닷가·휴양지로 떠나는 전형적인 여름 휴가 시즌이고, 8월 15일이 지나면 사람들은 서서히 휴양지에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바닷가의 소음은 차츰 잦아듭니다. 또한 피에몬테를 비롯한 와인 산지에서는 와인 수확 준비(포도 수확기, vendemmia)가 시작되며 여름 내내 햇살을 머금은 토마토·가지·호박·피망 같은 여름 채소가 막바지로 풍성하게 나오고, 동시에 버섯·트뤼플·포도·밤 같은 가을 재료가 등장하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Ferragosto 이후는 이미 가을의 문턱”이라는 감각이 있습니다. Ferragosto가 지나면 여름이 절정에서 내려오는 순간으로 여겨지지요. 특히 북부 피에몬테 같은 산간·포도밭 지역은 Ferragosto가 끝난 뒤부터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이 선선해져서 “가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해요. 아침 공기가 서늘해지고, 저녁 바람에는 숲의 냄새가 묻어납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져서, 아침 이불 속이 갑자기 포근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이 즈음입니다.


Ferragosto가 끝나야 비로소 계절이 바뀌고, 저는 그 변화를 집 안에서 먼저 느낍니다. 여름의 열기와 가을의 고요가 교차하는 이 짧은 순간, 계절은 우리 삶에 스며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지요.


샬레 근처에는 Sentiero Botanico라 불리는 아름다운 숲길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 길은 지역의 식물을 알아보고 배우며 걷는 산책로이지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표지판들이 놓여 있어, “여기엔 이런 허브가 자라고, 저기엔 이런 나무가 있다” 하고 속삭이듯 알려줍니다.


피에몬테의 숲 속 길답게 이 산책로에는 이곳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헤이즐넛 나무를 시작으로, 블랙베리·블루베리·쥬니퍼 베리·라즈베리 같은 다양한 과실수와 로컬 식물들이 길을 수놓고 있지요.


블랙베리
헤이즐넛 나무에서 딴 푸릇힌 헤이즐넛입니다.


아직 완연한 가을이 오진 않았지만, 숲은 이미 짙은 녹음의 여름에서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로 서서히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소나무 잎과 다양한 나무의 낙엽이 오솔길을 덮어, 발걸음마다 폭신한 감촉을 전해주며 걷는 즐거움을 더해주었습니다. 9월에 샬레를 다시 찾을 즈음이면, 나무마다 가득 열린 헤이즐넛을 따고 숲 속에서 버섯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계절이 열리는 순간, 저는 자연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9월의 저는 과연 어느 도시의 집에 머물고 있을까요?




오늘은 집에 돌아와 프랑스식 시골 요리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피에몬테의 산속에서 만드는 프랑스 시골 음식. Poulet à la chasseur.



Poulet à la chasseur는 ‘사냥꾼의 닭 요리’라는 뜻입니다. Chasseur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사냥꾼’을 가리키지요. 숲에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잡은 고기와 산속에서 얻은 버섯과 허브로 간단히 끓여낸 요리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고 따뜻한 맛을 지닌 이 요리는, 가을이 열리는 지금 이 순간과 참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Poulet à la chasseur에 간장을 더해 한국의 향을 입혀보려 합니다. 숲과 들에서 얻은 재료에 간장의 은근한 감칠맛이 어우러지면, 피에몬테와 프랑스의 가을과 한국의 맛이 한 그릇에 담길 수 있으니까요.


재료 (4인분 기준)


닭 넓적다리 4개 (뼈는 있어도 없어도 맛있습니다.)

양파 작은 것 1개, 다진 것

취향에 맞는 버섯 2컵, 슬라이스

마늘 2쪽, 다진 것

화이트와인 1컵

닭육수 또는 물 1컵

간장 3T

올리브오일 3큰술

버터 1큰술

허브 (타임, 타라곤, 파슬리 취향껏 한 줌)


만드는 순서

닭고기에 소금·후추를 뿌려 준비합니다.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닭을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 꺼내 둡니다.

같은 팬에 버터를 녹이고 양파, 마늘, 버섯을 볶아 향을 냅니다

화이트와인을 붓고 바닥에 붙은 갈색 자국을 긁어내며 졸입니다.

간장과 육수를 넣고 닭을 다시 팬에 넣어 뚜껑을 덮고 25~30분 약불에서 끓입니다.

곁들임 음식으로는 두 가지 버전 포카치아를 만들었습니다. 하나엔 로즈마리 허브로 향긋한 풀내음을 곁들이고 다른 하나엔 양파와 올리브를 넣었지요.


이렇게 가을을 조금씩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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