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앙티브 집을 채우는 오래되고 새로운 이야기들
앙티브 집은 바닷가 항구 옆, 피카소 미술관이 자리한 올드타운에 위치해 있습니다. 돌길과 꽃으로 수놓아진 이 오래된 동네는, 걷는 속도부터 말의 높낮이까지 모든 것을 천천히 바꾸어 놓습니다.
테라코타 지붕 아래, 옅은 노랑과 분홍빛으로 칠해진 파사드 벽들이 햇살과 어우러져 마을 전체를 부드럽게 물들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 뒤로는 새파란 지중해가 반짝이며, 세련된 세일링 보트들과 함께 이곳의 은은한 럭셔리함을 완성합니다.
수백 년을 버텨온 돌벽들 사이에 자리한 저희 집은, 돌아올 때마다 늘 조용히 저를 안아주듯 맞아줍니다. 묵직한 벽과 햇살 아래 물든 파사드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던 저도 어느 순간부터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 있었지요.
작년에 시작한 앙티브 집의 리노베이션은 남프랑스 사람들의 느긋한 성정 그대로, 공사와 휴식을 반복하며 천천히 흘러갔고, 결국 1년 반이 지나 이번 여름에야 비로소 끝을 맺었습니다. 공사는 두 달 전에 끝났지만, 앙티브 집의 진짜 완성은 그 이후의 청소와 정리, 그리고 다시 채우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 집을 채우는 일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한 장면들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일이었지요.
몇 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공수한 물건들,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식탁과 캐비닛, 페인트를 다시 칠해 새 생명을 불어넣은 빈티지 서랍장, 그리고 이탈리아, 발리,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하나씩 모은 그릇과 향초들까지—그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집은 기억의 조각들로 완성된, 저만의 작은 박물관 같기도 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집이 지중해의 바다와 프로방스의 시골 정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빈티지 오브제로 하나하나 채워졌지요.
앙티브의 금속 조형 예술가 Pascal Papalia의 물고기 조각, SABA의 유리 공예, Vallauris 도예가들에게서 직접 고른 수공예 그릇들. 가구들은 프로방스 지방 최대 규모의 앤티크 마켓, L’Isle-sur-la-Sorgue에서 구입한 뒤 하나하나 손질하고 페인트를 칠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전통 프로방스 바구니에는 Valensole에서 직접 수확한 라벤더를 말려 넣었고, 집 앞 바닷가의 모래는 유리 캔들 홀더에 담아 작은 풍경으로 남겨두었어요.
오늘은 남프랑스 앙티브의 햇살 아래, 드디어 연꽃 뿌리 재떨이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7년 전 치앙마이에서 구매해 유럽까지 함께 건너왔지만, 그 후로는 줄곧 신문지에 싸인 채 서랍 속에 숨어 있었지요. 잊혀진 것 같았던 그 작은 재떨이가, 지금은 이 테라스에서 햇살을 받으며 빛을 내고 있습니다. 벽 한켠에는 남편이 오래전 쿠바 여행 중 사 온 시가 상자와 책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집에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와 시간에서 왔지만, 이 집의 색, 향, 빛과 어우러지며 마치 이곳을 위해 태어난 듯 조화를 이룹니다. 이제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나의 시간의 일부가 되어 공간을 완성해 갑니다. 모두 각기 다른 곳에서 왔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의 취향과 감성으로 엮여가는 이 순간. 어쩌면 이 집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집합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이 새로운 집에서 살아 숨 쉬는 순간, 나 역시 그 안에서 조금 더 온전해집니다. 공간을 꾸민다는 건 결국, 나의 시간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 같아요.
저는 오늘도, 오래된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햇살, 그리고 조용한 테라스.
이 순간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앙티브는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입니다. 고대의 흔적과 지중해의 햇살, 파스텔빛 파사드, 그리고 오늘의 세련된 감각이 나란히 놓인 곳.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저는 오늘도 가장 빛나는 식탁을 요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