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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꼬뜨다쥐르, 앙티브에서 장보기

햇살 속을 걷는 리추얼

by Youmi Sa

Marché Provençal


저는 제철 식재료와 유기농 재료를 웬만하면 생산자에게 직접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이 있는 나라마다 단골로 가는 시장이 있고, 노르웨이에서는 game meat을 구하기 위해 사냥꾼 연락처까지 저장해두고 있지요.


자연이 만들어낸 제철 채소와 과일, 그 색과 향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워 보고, 만지고, 맛보며 계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시장에 가는 일은 단순한 장보기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기분 좋은 리추얼이 됩니다.


남부 프랑스 앙티브에서 제가 가장 자주 가는 시장은 올드타운 중심에 있는 Marché Provençal입니다. 피카소 미술관 근처에 자리한 이 시장은 크지 않지만 그 안에 온갖 생명력과 계절이 담겨있습니다. 이곳은 매일 아침, 신선한 제철 과일과 채소들로 가득 찹니다. 저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건 달력이 아니라, 바로 이 시장이지요.



봄이면 연한 초록빛 아스파라거스가 여름이면 진한 향을 머금은 토마토와 바질이 가을이면 호박과 무화과가 자리를 채우죠. 상인들이 자신의 정원에서 따온 꽃을 가져와 팔기도 하고, 신선한 우유와 치즈, 수제 버터들도 진열돼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Bordier 버터도 이 시장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아침, 시장 한켠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Socca(쏘까) 향이 시장 전체를 채웁니다. 쏘까는 병아리콩 반죽을 두껍게 구운 니스와 앙티브 지역의 전통 팬케이크인데, 따뜻할 때 먹으면 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워 저는 늘 한 조각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집어먹곤 하지요.


시장 초입 왼편에는 늘 미소 짓는 미셸 아저씨, 중간쯤엔 활기찬 파트릭 아저씨가 함박웃음으로 저를 반겨줍니다. 처음 이 시장을 찾았을 때, 저는 그저 영어를 쓰는 평범한 한국인 관광객 중 한 사람으로 보였겠지요. 대화는 조금 서먹했고, 표정도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저도 점차 앙티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영어로 시작되었던 인사는 이제 프랑스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대화에는 어느새 따뜻한 미소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주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인들과 얼굴도 익혀 수다도 나누고, 가끔 잔돈이 모자랄 때면 “c’est bon!” 하고 웃으며 깎아주기도 하고, 덤으로 가지 한 개, 토마토 한 알을 살짝 얹어주는 인심에 마치 한국같은 따뜻한 ‘정(情)’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의 시장은 그저 식재료를 사는 장소가 아니라 자연과 계절, 사람과 정서를 함께 만나는 공간입니다. 바구니가 점점 무거워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는 그런 마법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도시에는 생계를 위한 노동과 계절의 리듬, 그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삶의 숨결이 함께 흐릅니다.마르쉐의 채소들, 에메랄드빛 바다, 골드빛 햇살, 테라코타 지붕.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앙티브는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계절의 입구 같은 공간입니다. 그곳에 있을 때면, 저 역시 자연스럽게 가장 빛나는 식탁을 요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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