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계절의 경계에서
여름의 문을 늦게 닫고, 가을을 준비하는 계절의 중간.
8월 중순이 지나면 피에몬테에는 벌써 가을의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하지만, 앙티브는 여전히 여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산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북부와 달리, 이곳 남프랑스의 해안은 아직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시장에는 가지와 토마토, 주키니 같은 여름 채소들이 아직 산처럼 쌓여 있지요.
앙티브의 여름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바닷빛은 여전히 짙푸르고, 골목길의 테라스에는 저녁 늦게까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와인을 기울입니다. 마치 계절이 두 곳에서 엇갈려 흐르고 있는 듯한, 그 사이 어딘가에 제가 서 있는 느낌. 여름과 가을이 겹쳐지는 이 순간, 저는 계절이 주는 이중의 시간을 오롯이 맛보게 됩니다.
8월 말, 저는 피에몬테 집에서 앙티브 집으로 돌아옵니다. 두 계절이 겹치듯, 제 부엌에도 그 시기에는 여름과 가을이 함께 흐릅니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으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가을의 재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순간. 저는 바로 그 두 계절이 만나는 교차점을 사랑합니다.
피에몬테에서 앙티브로 돌아오자마자 앙티브 집 앞의 Marché provençal에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앙티브 시장에는 여전히 여름의 빛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토마토와 가지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옆 바구니에는 노란빛을 가득 품은 작은 버섯들이 담겨 있었지요. 지롤(girolle), 한국에서는 꾀꼬리버섯이라 부르는 이 버섯은, 밝은 노란색과 깔때기 모양으로 금세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볶으면 은근히 과일 같은 향이 퍼지고, 살구나 복숭아를 닮은 달큰한 뉘앙스를 남기는 게 특징입니다. 부드러운 크림이나 달걀과도 잘 어울려, 한입만 먹어도 여름 햇살이 아직 식탁 위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요.
9월의 첫 주인 오늘은 앙티브 시장에는 두 계절이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여름의 보석이라 불리우는 작은 황금빛 자두, 미라벨(Mirabelle)가 바구니 속에서 반짝이며 여름의 달콤함을 붙잡고 있었지요. 꿀처럼 달콤하고 과즙이 가득한 미라벨은 본래 로렌 지방이 원산지로, 짧은 여름의 순간을 빛내는 과일입니다.
그 옆에는 크고 단아한 초록빛의 자두, 핸느 끌로드(Reine-Claude)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잘 익으면 은은히 황금빛을 띠는 이 자두는 부드러운 과육 속에서 달콤함과 은근한 산미가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 과일을 ‘가을의 우아한 여왕’이라 부르지요.
미라벨이 여름을 마무리한다면, 렌 끌로드는 가을의 문을 여는 과일입니다. 결국 저는 두 과일을 모두 집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의 한 모퉁이에서 마주한 미라벨과 렌 끌로드는 마치 여름의 보석과 가을의 여왕이 나란히 앉아 있는 듯했고, 그 순간 제 바구니 안에도 두 계절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양의 온기와 그림자의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짧은 계절의 경계를 만끽하며, 오늘은 어떤 요리로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을까 조용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