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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례식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언젠가 본 영화가 생각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젊은 여자가 있었다. 유산도 꽤 있었는데 갑자기 암 진단과 함께 시한부선고를 받게 된다. 삶이 몇 달 안 남았다는데 자신이 죽고 나서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 만나는 남자한테 슬쩍 물어봤지만 놀라서 달아나 버린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오래 만난 전 남친을 찾아가서 다시 얘기한다. 그는 인간적으로 그 일을 맡아주기도 한다.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할지 함께 고민하다가 다시 사귀게 되고 결국 그녀는 약혼식처럼 지인들을 불러서 죽기 전에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하게 된다.      

그 당시만 해도 죽음에 별생각이 없었고 사전장례식이란 개념도 없던 때라서 그 설정이 신기하고 신선했다. 그래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야, 보고 싶은 사람들 초대해서 만나고 진짜 장례식은 가족끼리 정말 조용히 치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사전장례식이라는 말이 생기고 점차 알려졌다.      

 얼마전 드라마에서도 암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친구를 위해 브런치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이 나왔다. 친구가 자기 장례식에 초대할 명단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브런치 명단으로 만들어서 미리 서프라이즈 파티를 연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미리 만날 수 있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이번 장례는 조문하는 분들이 장소/시간에 구애없이, 온라인 상에서 충분히 고인의 생애를 돌아보고 고인을 추모하도록 하는 고인 중심의 장례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온라인 장례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장례는 상주 중심의 장례로서 많은 조문객들은 고인의 삶에 대하여 알고 추모한다는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가 다중 접촉을 절제해야 하는 팬데믹의 시대에 부합하고, 장례 참가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수고나 비용에 대한 개선 등 새로운 장례문화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방문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절하오니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고인에 삶에 대한 관심과 애도는 온라인을 통한 추도사나 마음으로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랜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우리의 인연은 대학 신입생 때부터이니 거의 40년이 된 셈이다. 그의 아버지의 부고는 신문기사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장도 없고 장지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두달이 지났지만 나도 아직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라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나도 사전장례식을 하고 장례식은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온라인 장례식을 처음이다. 돌아가신 날 바로 입관하고 다음날 발인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장례는 상주 중심의 장례로서 많은 조문객들은 고인의 삶에 대하여 알고 추모한다는 인식이 부족했습니다.’라는 부분에 공감이 간다. 온라인으로 받은 링크를 열어보니 기업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일생이 회고록처럼 잘 정리 되어 있었다. 추모의 글을 남기면 책자도 보내준다고 한다.      

  아들에게 보여주고 우리도 이렇게 하는 거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드라이하다고  싫다고 한다. 그래 우리는 중간쯤으로 할까 다시 물었다. 할머니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장례절차를 직접 치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 앞으로 반세기동안은 장례는 없을 거라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문상객이 전혀 없이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너무 섭섭한 일이겠지만 조용히 고인을 생각할 수 있는 방식도 좋은 것 같다. 

  어차피 슬픔과 애도의 시간은 삼우제가 지나고 혼자가 되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전 11화 일 년 뒤에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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