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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없애야 할 것들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특수 청소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읽었다. 가슴 아픈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죽음 뒤 남겨질 유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브 투 해븐>이라는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았다. 천국으로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주는 유품정리사. 고독사를 하는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거나 가족들이 의뢰해서 유품을 정리하기도 한다. 어떤 가족들은 유품 정리는 남에게 맡기고 값어치가 나갈 만한 물건만 가져가기도 한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들여다보지도 않던 가족들이 집문서나 현금을 놓고 싸우기도 한다. 다양한 죽음과 그 후의 일들을 보여준다.     

내가 진행하는 죽음학 워크샵, 인생리셋 수업시간에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두면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 남은 시간도 아까운데 그런 걸 뭣 하러 미리 하누’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향에 따라 미리 버릴 것은 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것도 백 사람이 다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이름도 못 남길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나. 나의 유품이라 봐야 대단한 것도 없다. 대부분 태워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이지 싶다.      

‘옷 안 사기’를 노력하고 있으니 있는 옷장도 점차 비우고, 물건들도 틈틈이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기도 하고 박완서 작가님 말처럼 되고 싶다.     

“버리고 갈 것만 남으니 홀가분하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일기장이다. 매일 일기를 쓴 지가 이십 년은 된 것 같고, 그 안에는 이런저런 개인사가 늘어져 있다. 내가 만난 남자 얘기도 다 써있다고 했더니 그걸 보러 가야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미리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면 내 손으로 태워버려야 할 텐데. 갑자기 사고라도 생기면 그 일기장들은 어찌할꼬. 언제쯤이 그런 사적인 물건들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시점일까.

죽기 전에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유언장도 미리 써보라고 말하지만, 육십에 유품정리를 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

오늘도 책장 한칸에 가득 쌓여있는 일기장을 한번 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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