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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Aug 23. 2020

해뜨기 전이 가장 외롭다


1.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청해도 쉽게 잠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새벽 네시 혹은 다섯시, 느닷없이 번쩍 눈이 뜨이고 나서는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불을 켜고 일어나 앉게 되는 것이다. 전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마신 술이 속을 쓰리게도 하고, 또 허기지게 한다. 언제부터고 침을 삼킬 때마다 내 목 언저리에 걸려있는 담배의 흔적도 여과없이 강하게 느껴진다.

새벽이 가진 특유의 고요는, 막 깨어난 감각들을 더 집중하게 만든다. 첫 메트로가 지나는 소리, 윙 하고 귀 언저리에 계속 머물러있는 정체불명의 진동,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커튼, 팔과 다리의 근육이 움직이는 모양. 이 새벽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와 표현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새벽에 가만히 앉아 아침이 있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에서, 나는 소위 아침형 인간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능률 좋게 중요한 일을 처리했다. 오후에는 조금 더 힘을 뺐고, 저녁에는 스위치를 껐다. 일을 할 땐 에잇투파이브로 출근하는 문화였고, 나는 그 생활리듬이 좋았다. 대학 시절 일찍 도착한,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폴 오스터나 아멜리 노통브 같은 걸 읽던 기억이 떠올랐고, 시험 기간 추운 공기를 뚫고 시린 콧등을 손으로 비벼가며 도서관을 향하던 새벽도 그리웠다. 일찍 시작한 하루는, 언제나 나를 부지런하면서도 여유있게 만들었다. 

파리에서의 삶에는 아침이 없다. 아침이 사라지고부터의 내 삶은, 하루살이 같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크게 집중할 것도, 일상적인 패턴도 없이 그 날 하루하루 마음 내키는 대로 산다. 새벽에 깨어 아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굳이 다시 잠을 청하지 않는다. 길게 이어질 하루를 위해 이 새벽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삶. 누구나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이십대 후반에, 이다지도 잉여로운 삶이라니. 


2. 

음주를 하고 난 다음날 일어나서 구수한 모카포트 커피를 내려마시는 아침. 전날의 찌질함에 대한 자기혐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부터는 열심히 살자는 다짐과 함께 생긴 이상한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한국의 익숙한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짧게 상상한다. 스포티파이가 추천하는 음악을 듣다 Herman Düne 라는 듀오를 발견했다. 찾아보니, 이 독일 이름을 가지고 영어로 가사를 쓴 이 밴드는 프랑스 출신이었다. (프랑스어로는 에르망 뒨느라고 한다지만, Herman은 너무 독일식의 이름이 아닌가.) <My home is nowhere without you> 라는 노래는 그래서, 뿌리내릴 곳을 찾는 정처없는 이의 노래인건가.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함에 대해서 생각했고, 왜 파리는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파리에 사는 외롭고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랑스러운 영혼들을 생각한다. 자존감은 현실 자아 나누기 이상적인 자아라고 혹자가 말했다. 파리에 온 많은 이들은 이상적 자아가 너무 높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잔인해서 방금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한걸까. 파리에 처음 왔을 땐, 사람들이 저런 짓을 왜 할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있다 보니 그렇다고 못할 건 또 뭐냐, 고 생각하게 된다. 파리란 도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안에서 제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인간만이 한없이 약하고 못나게만 보인다. 못난 인간일수록 빛을 발할 수 있는데가 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나의 외로움이 굉장히 고질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그냥 주절주절 아무거나 써내려가는 이 때, 외로움이 나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했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기타를 치고, 잠을 잤다. 내 삶을 옆에서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항상 존재해왔다. 내 삶과 감정이 ‘언제나 그 사람들에게 표현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혹은 그런 혼자인 상태를 마주하지 않으려 기를 썼거나. 나는 그 사람들 속에서 살았고, 그것이 아닌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혼자 앉아 가만히 외로움이란 놈을 대하다보니 조용하고 사려깊은 이놈이 사랑스러워진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자신의 기능을 다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는 재미없고 끔찍하다. 나에게 내 기능을 해내라고 강요하는 사회를, 모두에게서 기능을 찾아내는 사회를, <이점>만을 얘기하는 사회를 경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재화들처럼, 사람들도 가로질러지길 찬양하는 사회의 신념에 대해서 생각한다. 글로벌 시대의 인재. 그러나 내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내가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않고 잉여인 것이 왜 이렇게 찌질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일까.

비빔면을 끓이다 찬 물에 헹구지 않은 면에 소스를 부어버렸다. 비빔면 특유의 탱글탱글한 맛은 사라지고, 얇디 얇은 면은 순식간에 푹 퍼져버렸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가면서 먹어치웠는데 너무 맛이 없다. 퍼져버린 비빔면에 내 삶을 대입하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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