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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Oct 04. 2020

비싼 나라의 체감 물가

1. 비싼 나라의 체감 물가 *

비싼 나라에 살다보면 느껴지는 체감 물가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칠천원을 주고 찌개 하나에 여섯가지 반찬이 나오는 정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면, 파리에서는 만원을 주고 맥도날드 빅맥 세트를 사먹어야 하는 것처럼. 또는 태국에서는 삼천원이면 먹었던 파타이를 파리에서는 만삼천원을 주고 먹어야하는 것과 같이. 괜찮은 프랑스식 식사는 30유로를 훌쩍 넘기는 데다, 조금씩 시키다보면 가격이 끝을 모르고 치솟기 때문에, 정말로 큰 마음을 먹고 외식을 하게 된다.

파리에서는 이처럼 상대적으로 너무 높은 물가 때문에 ‘돈 쓰는 재미’ 같은 걸 느끼지 못하고, 나는 기껏해야 싼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걸 행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싸고 맛있는 와인도.) 그런 상대적인 물가말고도 여기는 절대적인 물가가 비싸서, 가난한 유학생은 물론 프랑스인들 역시 한 푼을 허투루 안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간단한 즉석음식을 먹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단골바에서 자주 보던 친구는, 3유로 짜리 하우스 와인을 시켜먹던 우리를 보며 “오 와인 마셔?” 라고 놀리듯 말했다. 가난한 본인은 맥주를 먹는다며. 파인 다이닝에 대한 프랑스에 사는 보통 청년의 뿌리 깊은 비아냥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갖거나 먹고 싶을 때,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선택지를 고심하는 것. 그것이 돈 쓰는 재미인 것을. 이곳에선 품질은 잘 모르겠고 비싸며 적은 선택의 스펙트럼에서 지갑을 열기가 꺼림직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하다못해 문구류마저도, 쓸데없이 비싼데 진짜 안이쁘다. 

그래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슈퍼마켓의 물가는 싸지 않냐고, 소비주의로 물들지 않고 데이트로 공원 산책이나 피크닉을 선택하는 게 파리의 로망이지 않느냐고, 파리 레스토랑이 비싼 건 시급이 비싸서 그런 거라고 하는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아시아만 오면 그렇게 황제처럼 돈 쓰는 재미를 느끼는 게, 나만 불편한가. 비싼 나라를 여행하면서는, 침대 하나를 빌리는 데도 30유로가 훌쩍 넘는 반면 동남아에서는 수영장 딸린 호텔에 묵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비싼 나라는 여행객들의 쇼핑 리스트에는 일생에 큰 맘 먹고 사야하는 명품으로 채우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웅장하게 지어 수취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는 한 편, 싼 나라를 여행할 때의 투두리스트는 먹을 것, 마사지, 레포츠 등 가난한 자들의 노동으로 채워져있으면서 ‘힐링’, ‘느림’ 같은 단어로 포장되고 있으니까.


*사실 서울의 물가도 많이 올랐고, 우리도  동남아에서 황제처럼 구는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2. 가난한 자가 가진 체념의 밀도 


앞서 말한, 맥주를 마시던 프랑스 친구의 비아냥이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내가 상상하던 프랑스라는 나라는, 두터운 중산층을 가진 풍요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하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대부분의 프랑스 친구들은, 조금 구두쇠 같은 면을 갖고 있었다. 비싼 집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한창 우리를 키울 때의 우리 엄마, 아빠 같았다. 밖에서 뭘 잘 사먹지도 않고, 장을 봐와서 세 끼를 꼬박 챙겨먹었으며, 샌드위치나 샐러드로 식사를 하는 일도 많았다. 대학원 친구들도 쉬는 시간 중간중간에 싸온 도시락을 먹곤 했으며, 대학교 매점의 샌드위치는 3유로부터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던 그 아이의 눈에는 자기보다 지갑을 잘 여는 아시아인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 켠으로는 그에게서 ‘가난한 자의 체념’을 읽었는데, 나는 그 체념의 밀도가 우리나라와 다를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부모의 부가 너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되물림 되고 있는건 맞지만, 우리 부모의 부모의 부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우리 부모에게 되물림 되지는 않았으니까. 대한민국은 1948년 세워졌고, 1950년부터 지독한 전쟁을 겪었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제 시대 때의 권력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 시기 우리 조부모는 평준화된 가난의 시대에 살았고, 부모 세대는 급격히 성장하는 대한민국에 몸을 실어 치열하게 살았으나, 모두가 부를 이루어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세대보다도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는, 개인이 어떻게 사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천차만별이란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도한 것 아닐까. 우리는 그런 부모의 밑에서,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열심히 하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거라고 믿으면서 커왔던 것 아닐까.  

그런데 그토록 느리게 변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가난한 자는 언제부터 가난했을까. 젊은이들이 사회를 바꾸려했던 68혁명 때일까, 프랑스 현대사가 시작되었던 2차 대전 후의 샤를 드 골 시대일까, 아니면 그보다 앞선 프랑스 대혁명일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한 번도 사회가 ‘리셋’된 적 없다면, 심지어 프랑스 대혁명을 돈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마저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거고, 훨씬 전부터 부르주아 계급이 존재했던 거라면? 이 사회의 구조는 얼마나 견고하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체감하는 체념의 밀도는 우리보다 얼마나 높을까? 그런데(그래서) 젊은 이들의 시위는 이토록 격렬한가? (한 편으로는 왜 이리 폭력적인가?)  

애초에 체념의 밀도나 변화의 열망이 한 선에서 비교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의 청년이 가진 체념의 모양과 더 잘 살고자 하는 열망의 생김새가 다른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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