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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Aug 31. 2020

프랑스 화장실에 대한 생각들


1. 프랑스의 가정 화장실


프랑스 집에 놀러가면 욕실과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다. 세면대와 샤워시설이 있는 욕실과, 배변기'만' 있는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소변 또는 배변을 보고서 왜 다시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어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집의 일반적인 구조를 보면 다 그런 식이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길다랗게 복도가 이어지고 거실조차 하나의 방 개념으로 되어있다. 한국처럼 넓은 거실 개념이 아니라, 응접실 같은 개념이랄까. 손님들은 이 응접실에 머물고, 이곳은 단절된 공간이다. 주방에 들어가 오지랖을 피우며 음식하는 걸 도와주거나 다른 방을 기웃거리는 것도 예의에 다소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 공간은 '사적인' 공간이므로, 손님에게는 응접실이라는 공간이 허용된다. 응접실을 포함해서 모든 나뉘어진 공간을 하나의 '방(piece)'로 세는데, 그렇기 때문에 방이 두 개라고 해도, 대게는 좁은 거실과 하나의 침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모든 공간이 사적이고 기능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화장실도 욕실과 배변기를 나누어놓은걸까. 똥 쌀 사람은 싸고, 샤워할 사람은 샤워하는, 실용주의의 단면인걸까. 

반면 한국의 넓은 거실은, 비록 모두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가족과의 대화를 점점 잃어가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거실에서 가족 중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며, 거실에 있는 TV의 채널권을 얻기 위해 가족들 누군가와 싸운 적이 있으며, 거실을 지키고 있는 자는 누가 방에 있고 누가 집에 없는지 집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물론, 가족이 남기고 간 배변 냄새를 맡으며 샤워하기도 하고.  


 

2. 프랑스의 공공 화장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화장실이 많다. 거의 50대 50의 비율로 변기 커버가 있는 화장실과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게 된다. 쇼핑몰과 회의장, 고급 레스토랑의 화장실은 변기 커버도 있고 깨끗하지만, 저렴한 레스토랑이나 술집, 따박 커피숍(담배도 팔면서 커피를 파는 동네 카페), 특히 대학의 화장실에서는 변기 커버를 발견하기 힘들다. 양변기 전체를 덮는 그 커버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라면 소변이 튈까 올리고 싸는 그 커버까지도 말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사는 언니는 영리하게도 학교에 화장실 환경 개선을 요구하겠고, 화장실 커버를 달겠다는 공략을 내걸어 유학생 대표가 됐다고 한다. 

커버도 커버이거니와, 나는 양변기에 내려가지 않고 남아있는 휴지를 보고서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졌다. 커버가 없는 변기에 묻은 찝찝한 액체들을 휴지뭉치로 닦아내고 거기에 닿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소변을 보는 일도 익숙해졌다. 

다양한 센스와 예쁜 글씨로 "휴지는 휴지통에 버릴 것"을 종용하는 다양한 메모는 커녕, 화장실문 특히 대학교 화장실은 각종 화이트와 매직으로 빼곡히 쓴 낙서로 덮여있다. "대학이 나를 죽인다"는 저항의 발언부터 "LM♡JP" 같은 만국 공통의 낙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에 "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라는 파스칼의 말까지 댓글로 달린 걸 보면 진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말이지 조금도 더 머물고 싶어지지 않는 화장실에 앉아 이런 사색을 한단 말이지. 

파리의 늦은 밤, 길거리에 술취한 사람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본다면 화장실의 변기 커버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고, 사실 화장실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건물부터 오래되었으며, 아주 느린 행정의 결과로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라는 어쩌면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공간에서 한국은 "깨끗한 화장실"이라는 기치를 아주 잘 따르고, 더러움이나 불편함-나아가서는 추하고 불온전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닐까. 그치만 나는 이 화장실을 못참고, 한국으로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3. 기타 

1) 프랑스에 와서, 나는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물론 (거의 없는 경우긴 하지만)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는 남자도 무조건 변태 취급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2) 유럽의 화장실은 비싸다. 야외 화장실을 가는데 자그마치 천 원을 내야한다니. 공원이나 벼룩시장에서, 몇 백 미터나 떨어진 화장실을 겨우 도착하면 그나마 관리인이 있고 청소해줘서 깨끗한 화장실을 만날 수 있고, 큰 지하철역이나 길거리 옆 자동으로 돈을 넣고 들어갈 수 있는 공공 화장실은 뭐… 위의 많은 예로 대신하겠다. 그나마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영수증 코드를 요구하지 않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의 화장실, 큰 쇼핑몰의 화장실이다. 심지어 영화관 화장실 역시 상영관 안에 위치해있다. 

이런 탓에 집을 나서기 전에는 무조건 볼 일을 보게 되고, 지하철 역에서는 절대로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소변 냄새를 자주 맡게 된다. (급하게 화장실 가고 싶은 걸 너무 괴로워하는 나는, 한 번도 에펠탑 불꽃놀이를 보러 간 적이 없다.)

하루는 룩상부르그 공원에 친구들과 피크닉 갔다, 도란도란 나눠마신 와인에, 세 명 모두 합쳐 와인값만큼의 화장실 이용비를 냈다. 샹젤리제 거리의 크리스마스마켓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때에는, 점심은 제공이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화장실비를 주는건 아닌지 묻고 싶었다. 시중이 항상 개인 변기를 대령했기에 화장실을 짓지 않았던 루이 14세의 모습이, 자유 평등 형평을 이야기하는 현재 프랑스에서 보이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니었으면 한다. 궁전과 정원 곳곳에서 볼 일을 봤던 건, 루이 14세나 개인 변기를 가진 귀족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풍기는 냄새처럼 가난한 이들의 소변일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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