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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KCHIC Mar 13. 2018

09

<카페에서>

2017, Instant Kafe, Munhwadong, Daegu



논문 심사가 삼일밖에 안 남았다.


 자는 둥 마는 둥, 먹는 둥 마는 둥 한지도 벌써 삼 주째다. 머리는 이미 과부하가 걸렸고, 더 이상 수정할 게 없어 보이는데 교수님은 계속 무언갈 원하신다. 마른걸레를 아무리 힘껏 짜 봐야 힘만 들지, 싶다. '카톡'. 카톡 알림이 울린다. 지지난달 결혼한 친구 녀석이 단톡방에다 웬 이미지를 올린다. 얼핏 봐도 새 집 약도이다. 집들이할 테니 모두들 오란 눈치 없는 희소식.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확신이 없는대도 집들이 선물로 뭐가 좋을지 고민한다.


 분명 좀 전에 카페에 왔을 땐 사람들이 왕왕 오갔는데 지금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저쪽 구석에 같은 과 후배님 - 나보다 학기는 후배지만 나이는 많은 – 뿐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젠 이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잠도 오지 않는다. 심란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빨리 끝났으면 싶다.


 터덜터덜. 1층에서부터 누군가 올라온다. 그녀다. 까만 앞치마 차림으로 치우지 못한 테이블이 있나 층 전체를 쭉 훑는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망설이다 수줍게 눈인사하려는데 그녀는 다시금 터덜터덜 1층으로 내려간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축 처진 어깨가 그렇다. 그래도 예쁘다.


 작년 여름이었나, 싶다. 작년부터 논문 때문에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있었던 덕분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매일 그녀를 봤다. 어떤 이들은 잠에 들고, 어떤 이들은 술에 취할 시간. 24시 카페에서 일한다는 건 꽤나 힘들 텐데도 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늦은 새벽이 낮처럼 환해지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녀의 얼굴에 얼마 전부터 그늘져 보인 건 기분 탓일까. 맑았던 두 눈이 뿌옇게 아득해진 건 누구 때문일까, 무엇 때문일까. 쓸모 없이 버려져 있던 오지랖이 움튼다. 궁금해진다.


 쓰던 글을 멈추고, 사뿐사뿐, 1층으로 내려왔다. 전혀 졸리지 않지만 최대한 피곤한 척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주문한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드를 긁고, 커피콩을 갈고, 온 힘을 실어 탬핑을 한다. 일 초, 이 초, 삼 초, 이윽고 26초. 26초간 굉장한 압력으로 짜인 커피 엑기스가 준비된 얼음컵 위로 천천히 떨어진다. 그리곤 어우러진다. 그녀가 커피잔을 건넨다. 받자마자 그녀에게 다시 건네준다. 귓불이 화끈해져 도망치듯 올라온다. 쑥스럽지만 흐뭇하다.


 올라오며 후배님과 눈이 마주친다. 후배님이 기다렸다는 듯 테라스로 고갤 까딱거린다. 익숙하게 바지 뒷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한 개비 문다. 짧은 불과 함께 타들어가는 담배연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못 참겠듯 뱉어진다. 하늘 가득 뿌연 연기가 자욱하다 이내 맑아진다. 하루종일 뿌옇게 흐리던 하늘 또한 함께 맑아진다.


#공간그리고사람 #BYPAK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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